2025/04 30

도시락 먹는 기분

도시락 먹는 기분주상태 아침밥을 먹다가 알았다매일 먹는 밥은 도시락이었다는 사실을엄마 만나러 동대구 가는 길은 소풍이었다고믿고 싶은 것을 잡곡밥에 물을 부어 렌지에 돌리면밥은 부풀어 오르고 새 밥이 되어 나를 맞이하고김치가 없어도 단무지로 삶은 살아갈 수 있다고 계란말이는 아니어도 동그랑땡이 식어도따뜻한 밥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시락을 먹으며시절을 꿈꾼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부터도시락은 소풍처럼 나를 흔들고바람 잘 날 없는 시절을 지나치고지나치고지나쳐 세월은 흐르고 도시락을 먹는 것은밥을 짓고삶을 노래하는 거라고 2025. 4. 15 09:25

시를쓰다 2025.04.17

끝까지 믿어 준 김장하 선생…기부보다 어려운 용기

끝까지 믿어 준 김장하 선생…기부보다 어려운 용기김은형기자수정 2025-04-10 15:13 등록 2025-04-10 11:51 탄핵 심판 때 인용 판결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주목받으며 그가 등장했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재개봉하는 등 김장하 선생에 대한 관심까지 다시 불 지펴지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 재판관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했다. 2019년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기를 질색하는 김장하 선생을 위해 지인들이 몰래 준비한 서프라이즈 생일파티에 찾아온 문형배 판사는 고마움을 전하다 목이 메었다. 2022년 말 지역방송(엠비시경남)에서 방영한 작품이 SNS에서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빨리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다큐를 보면 김장하 선생한테 도움을 ..

칼럼읽다 2025.04.16

기록하지 않은 기억

기록하지 않은 기억 수정 2025.04.15 21:29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달리기를 한 지 몇년 됐다. 신던 운동화로 뛰다가 러닝화를 샀고, 앱을 설치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를 몇분에 뛰는지 평균 속도를 관리하면서 동기부여가 되고 뛰는 거리가 늘고 속도가 빨라졌다. 1년이 지난 후 스마트워치를 사서 차고 나간 다음에는 몸이 더 가벼워지고, 심박수까지 관리가 되면서 더 많은 기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 기록이 기억이 되기 시작했다. 앱을 켜지 않고 뛰다가 한참 후 알게 되면 망연자실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지만, 기록은 남지 않은 것이니 사실상 뛰지 않은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겨울에 실내 러닝으로 전환하면서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칼럼읽다 2025.04.16

엉겁결

엉겁결 수정 2025.04.13 21:21 김선경 기자 햇살이 따뜻하다.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간밤에 비가 조금 내려 땅이 촉촉이 젖어 있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따라 망우산 둘레길을 걷던 중, 그만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밟아버렸다. 신발은 엿처럼 끈적끈적한 진흙으로 엉겁이 되었다. 야단났다. 또 ‘털팔이’처럼 뭘 묻히고 왔다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듣게 생겼다. ‘엉겁’은 엿처럼 끈끈한 물건이 범벅이 되어 달라붙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 ‘엉겁’은 요즘 하는 일 없이 사전 깊숙한 곳에 쓸쓸히 앉아 있다. 단짝 ‘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이라는 발음 때문에 간혹 엉겁이 ‘엉겹’으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을 만나면 즐겁다. 함께 뭉..

문장놀이 2025.04.15

무 수정 2025.04.13 21:26 이설야 시인    시골집 텃밭에 쭈그려 앉아 무를 뽑았다희고 투실투실한 무였다너희들 나눠 주고도 이걸 다 어떻게 하냐시장에 나가서라도 팔아 볼거나어머니는 뜻하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머릿속을 텅 비게 해 주는 무였다손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마음은 쉬었다 뽑아낸 자리마다 근심을 묻었다이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시원하려나내 근심 묻은 자리마다 무가 다시 자라날 것을어머니도 알고 나도 알았다애초에 어머니도 무였고 나도 무였으니그러니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상욱(1967~2023)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을 읽는다. 시인은 ‘달나라 청소’라는 상호가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계단 닦는 일을 했다. 그는 청소용품을 차에 싣고 어디든 달려갔을 것이..

책이야기 2025.04.14

괴물과 초원사진관의 차이 [크리틱]

괴물과 초원사진관의 차이 [크리틱]수정 2025-04-09 18:48 등록 2025-04-09 18:45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영화관에서 연간 73일 이상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 제도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뜬금없을 정도로, 지난 30년 한국영화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투자협정(BIT)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려던 정부에 맞서 영화계 전체가 투사로 변신했던 1998년, 아름답고 잔잔한 영화 하나가 극장에 걸린다. ‘8월의 크리스마스’다. 주인공 한석규가 일하던 ‘초원사진관’은 영화 자체와 동일시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도 군산시 신창동을 찾은 많은 이들은 사진관 앞에서 영화 속 주..

칼럼읽다 2025.04.13

고양이 나라

고양이 나라 수정 2025.04.09 21:33 임의진 시인   재작년인가 ‘이매진도서관’ 식구들이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을 한번 뵙고 싶다고 요청. 이전에 사석에서 인연도 있어 강연회에 모셨다. 고양이 캐릭터 ‘냥도리’가 등장하는 만화를 화면 가득 보면서 정치 풍자의 해학을 즐겼다. 강연 후엔 백지에 냥도리 사인도 나눔했지. 나도 한 장 받았는데 어디 뒀더라? 자취 집 데이트 신청이 과거엔 “라면 먹고 갈래?”였는데 요샌 “고양이 보고 갈래?”로 바뀌었단다. 애묘인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고양이가 대세다. 지난주 헌재 재판정 풍경을 생중계로 구경하면서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의 우화소설 고양이 사무소-어느 작은 관공서에 관한 환상>을 떠올렸다. 내 묘한 기억력은 가끔 소설이나 영화의 장..

칼럼읽다 2025.04.13

새로운 날은 과거의 실수를 제물로 삼아 온다

새로운 날은 과거의 실수를 제물로 삼아 온다 수정 2025.04.10 21:28 레나 사진작가  빨리 핀 꽃들은 지고, 그 위를 새로운 꽃들이 덮는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꽃들처럼 인간도 과욕을 버릴 수 있다면. ⓒ레나  햇볕이 부쩍 맑고 따뜻해졌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마흔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봄꽃을 본 날이 어쩌면 봄꽃을 볼 날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더 곱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번 봄꽃이 유난히 반가운 것은 겨울이 그만큼 추웠기 때문이리라.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10년 ‘불새’를 탈고한 후 고대 러시아 축제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 ‘봄의 제..

사진놀이 2025.04.12

투명한 승부에 끌린다

투명한 승부에 끌린다 수정 2025.04.10 21:35 김봉석 문화평론가   한국 최고의 바둑 기사이며 사제지간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드라마틱한 승부를 그린 영화 승부>.  바둑은 둘 줄 모른다. 할아버지는 바둑을 즐겨 두셨고, 바둑을 두는 친구들과도 가까웠지만 딱히 배우지 않았다. 잡기를 싫어한 건 아니다. 중국과 일본 장기, 체스를 두고 화투와 포커 등도 한다. 바둑을 볼 줄은 안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바둑책을 그냥 읽었고, 신문에 나오는 기보도 매번 들여다봤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집에 있던 책과 잡지, 신문을 다 읽을 때라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서봉수와 조훈현의 스토리를 알게 됐고 차민수, 이창호, 이세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난달 26일 개봉해 12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 순항 중..

칼럼읽다 2025.04.11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나이 묻지 마세요 수정 2025.04.09 21:33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왜들 그리 남의 나이를 궁금해하나 모르겠어.” 어머니께서 잔뜩 기분이 상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제 90대 중반을 지나 100세를 향해 가는 어머니는 어디를 가도 최고령자이고, 가는 곳마다 당신의 나이가 화제가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조금만 친해지면 형님, 동생이고 처음 보는 이에게도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지만 정작 나이 확인은 복잡하다. 음력, 양력 생일이 다르다. 누구는 ‘빠른 ○○년’이라 하고 또 누구는 호적이 잘못됐다고 한다.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입학 시기를 정하고 만 나이 기준을 법으로 도입했지만,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관계에서 나이는 ..

칼럼읽다 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