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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까치발

[말글살이] 까치발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 입구 바닥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안내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신호등 앞에서 한 노인이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며 하지정맥류를 예방하는 만병통치의 까치발 운동.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고 있겠지. 새들은 모두 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까치를 자주 봐서 까치발이려나, 한다. 제비발이나 까마귀발이라 해도 문제없다. 네발짐승들도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힘만으로 걷는다. 네발이니 땅에 닿는 면적이 좁아도 괜찮다. 강아지만 봐도 발꿈..

연재칼럼 2023.10.27

나 혼자 짝사랑의 나라, 폴란드

나 혼자 짝사랑의 나라, 폴란드 입력 : 2023.10.19 20:29 수정 : 2023.10.19. 20:33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유럽은 좀 얄밉다. 지구는 명확하게 둥근데 무슨 자격으로 근동, 중동, 극동(極東)이라는 제 중심의 거리에 따른 얄팍한 명칭을 입에 올리는가. 우리라고 말서(末西)라는 말을 몰라서 저런 용어를 안 쓰는 게 아니다. 아무튼, 그런 해묵은 지역색은 접어두고 세계지도를 본다. 지지고 볶으며 자기들끼리 사는 소란으로 늘 떠들썩하다.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 낯설기 짝이 없는 한 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섬나라 영국과 그 이웃한테 늘 당해온 아일랜드, 노벨을 배출한 스칸디나비아반도, 스피노자의 네덜란드, 맥주의 독일, 와인의 프랑스, 건축의 스페인과 축구로 남북..

칼럼읽다 2023.10.22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입력 : 2023.10.08 20:39 수정 : 2023.10.08. 20:40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의 법률상담을 했다. 얼마 전 예쁜 아이가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고 러시아에도 출생신고를 하려 하니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이 상실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적법에서 러시아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귀화 절차로 러시아 국적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사후적으로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한 것이 돼 한국 국적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한국 국적이 상실된 상태를 ..

칼럼읽다 2023.10.22

어떻게 송이버섯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송이버섯을 사랑할 것인가 입력 : 2023.10.06 20:21 수정 : 2023.10.06. 20:22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송이는 영어권에서는 matsutake mushroom 혹은 pine mushroom이라 부른다. 마쓰타케는 일본어로 마쓰는 소나무를, 타케는 버섯을 뜻한다. 송이는 오래전부터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아왔는데 인공적으로 경작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이가 사라지는 것은 소나무 숲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 칭은 (2011)에 실은 “포용의 기술, 버섯을 사랑하는 방법”에서 일본과 미국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송이가 단지 맛있는 음식만이 아니라, 환경적 웰빙의 상징이 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소나무 숲은 ..

칼럼읽다 2023.10.21

혀 위에서 만나요

혀 위에서 만나요 입력 : 2023.10.20 20:49 수정 : 2023.10.20. 20:53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책을 읽다보면 이 작고 가벼운 물체가 뭐길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지 경이로울 때가 있다. 책은 고정된 사물이어서 분초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은 흐르는 강물이기도 하다. 떠다니는 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로 헤엄쳐 책의 섬으로 다가오고 이 섬에 모여 작가라는 사공이 젓는 배에 오른다. 그 뒤로 얼마나 유장한 풍경이 펼쳐지는지는 실제 책을 읽은, 독자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 얼마 전 19회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책이 이끄는 절경을 보았다. 100여명의 동승자들만 누리기엔 아까운 순간이었기에 고정된 활자로 남겨..

책이야기 2023.10.21

육식의 종말?

육식의 종말? 입력 : 2023.09.14 20:32 수정 : 2023.09.14. 20:33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얼마 전 한 과학강연에 다녀왔습니다. 주제는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지구온난화였는데요, 그 주된 원인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산업화에 따른 탄소배출량 증가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향후 100년 안에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6도 이상의 기온 상승도 가능하며, 이는 인류의 멸종 또한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끝으로 강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몇몇 참석자들과 온난화의 다른 원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소고기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당연히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깃거리였죠. 의외로 소는 많은 양의 메탄가스를 방출합니다. 그리고 이는 이산화탄소..

칼럼읽다 2023.10.21

분서갱유의 카르텔

분서갱유의 카르텔 입력 : 2023.10.18 20:10 수정 : 2023.10.18. 20:11 장지연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2000년대 초반 일이다. 개성공단으로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 방송국에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연구 모임이 고려 개경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방송국에 여러 자문과 함께 북한 측 연구자 ㅈ씨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들으라고 조언했다. ㅈ씨는 해방 후 개경 성곽 전체를 직접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분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온 방송국팀이 전한 북한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촬영이 자주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추천한 ㅈ씨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를 보자기에 싸..

책이야기 2023.10.20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입력 : 2023.10.20 20:49 수정 : 2023.10.20. 20:53 한윤정 전환연구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이 나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하루키 소설을 따라 읽어온 터라 이번에도 습관처럼 책을 주문했고, 760쪽 분량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틀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오래된 독자들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라는 이름이 여전히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 이 책은 예약판매 단계부터 3쇄라는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두 달째 주요 서점의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4세인 하루키는 극렬한 학생운동 세력인 ‘전공투 세대’로서 폭력적 집단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내면과 일상에 천착했다...

책이야기 2023.10.20

75년 전 오늘, 여순에서 벌어진 일... 양지바른 곳에 묻힌 학살자

75년 전 오늘, 여순에서 벌어진 일... 양지바른 곳에 묻힌 학살자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여수지구계엄사령관 송석하, 반군토벌사령부 정보참모 백선엽 23.10.19 14:55l최종 업데이트 23.10.19 20:36l 정성일(jsichj) 10월 19일은 여순민중항쟁 75주기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오랫동안 여순민중항쟁은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습니다. 75년 전 여수와 순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동족상잔 결사반대 여수 제14연대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미군 철수시 국방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미군정이 기존 9개 연대 외 6개 연대를 추가하며 창설됐습니다. 광주에 주둔한 제4연대 안영길 대위 등 기간병력 1개 대대가 1948년 3월부터 여수 신월리에 내려와 전남 동부지역에서 모병..

칼럼읽다 2023.10.20

기름진 맛 조미료?

기름진 맛 조미료? 입력 : 2023.10.19. 20:26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제가 좋아하는 튀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기름진 맛도 하나의 맛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인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맛을 보통 5가지로 구분합니다. 19세기까지는 단맛·짠맛·신맛·쓴맛의 4가지 맛만 인정됐습니다. 이 4가지 기본맛 그리고 이들이 서로 혼합된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맛이라 본 것입니다. 기원전 4세기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이래 거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감칠맛이 등장한 것은 1908년 도쿄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우마미’라 부르던 것을 또 다른 별개의 기본맛이라 주장하..

칼럼읽다 202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