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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과학문화

크리스마스와 과학문화 1856년 영국왕립연구소에서 대중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 중인 마이클 패러데이. 영국왕립연구소 제공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짧아진 낮 때문에 밤 같은 컴컴한 저녁 거리는 반짝이는 장식과 조명으로 화사하다. 상점에 전시된 화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양초를 바라보며 문득 위대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마이클 패러데이를 떠올린다.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난 패러데이는 고작 열세살 때부터 생계를 위한 밥벌이에 내몰렸다. 첫 직장인 제본소에서 성실하게 일한 그를 기특하게 여긴 사장은 패러데이가 공부하여 기록해둔 노트를 주요 고객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한 손님이 패러데이에게 감명받아 선물을 남겼다. 과학 강연 입장권 선물은 패러데이의..

칼럼읽다 2023.12.25

덜 사는 기쁨을 찾아서

덜 사는 기쁨을 찾아서 입력 : 2023.11.26 20:20 수정 : 2023.11.26. 20:21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엄마랑 구제 옷 쇼핑을 같이 다닌 건 열 살 때부터다. 헌 옷을 산 뒤 세탁해서 입는 일상이 우리 모녀에겐 익숙했다. 헌 옷은 크고 작은 하자가 있었지만 저렴했고 선택지도 많았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구제 시장의 풍요 속에서 멋을 부리며 살았다. 엄마와 나의 키가 똑같아진 고등학생 때부터는 서로 옷을 돌려가며 입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옷을 고르면서 하는 대화들을 좋아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보여지고 싶은 방식, 체형, 콤플렉스, 자랑스러운 부위, 피해야 하는 스타일, 선호하는 색과 패턴, 편안하면서도 고유한 그 모든 옷차림들…...

칼럼읽다 2023.12.25

친애하는 나의 도시, 부산

친애하는 나의 도시, 부산 지난 11월 눈 내린 부산 송상현광장. 사진 이고운 [서울 말고] 이고운|부산 엠비시 피디 부산에 돌아와 맞는 여섯 번째 겨울. 12월 초만 해도 은행나무에 노란 잎이 남아있을 만큼 겨울이 더디게 오는 것 같더니, 부쩍 추워졌다. 어젠 점심 때 짧게 눈도 내렸다. 집중해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희미한 눈발이었다. 그마저도 십분 안에 그친 눈을 보며, 동료들과 함께 “이 정도면 부산에선 폭설인데요”, “교통마비 때문에 집에 못 가겠네요” 같은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내복이며, 털모자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챙겼다. 어느새 부산의 겨울에 익숙해졌다. 희뿌연 게 흩날리기만 해도 마음이 들뜨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칼럼읽다 2023.12.25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어떤 시인의 데뷔 방식 입력 : 2023.12.24. 19:49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작가의 데뷔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굴까? 데뷔 작가의 대부분은 출판사나 신문사 혹은 문학상의 심사위원들로부터 발탁된 바 있을 것이다. 입구가 바늘구멍처럼 작을수록 등용문은 멀어지고 높아지고, 그렇기에 더욱 권위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자나 심사위원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선택받지 못한 다수는 포기하거나 재도전하며 특수한 시험대를 통과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누군가의 승인 없이 스스로 데뷔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새롭게 길을 낸다. 독자와 작가 사이 관문 건너뛰기 12월16일. 시인 계미현은 웹사이트 형태로 첫 시집을 발표했다. 디지털 영토 위에 지어진 이 시집엔 그의 글을 정..

책이야기 2023.12.25

중독 시스템 안에서 여유롭게 살 권리?

중독 시스템 안에서 여유롭게 살 권리? 강수돌 칼럼 mindle@mindlenews.com “위 사람은 행동이 방정하고 성적이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이 상장을 수여함.” 학창 시절에 보았던 ‘우등상장’의 내용이다. 소수의 모범생만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생들도 결국은 ‘방정한 행동과 우수한 성적’을 기준 삼아 살게 만드는 교육적 장치! 이 장치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상을 받거나, 받는 걸 본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본능적이건) 나중에 취업하면 다음과 같은 포상을 바라게 될지 모른다. “위 사람은 우수한 기량과 성실한 자세로 근로함으로써 우리 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기에, 이에 ‘모범 근로자상’을 수여함.” 이른바 ‘모범근로자’에게 주는 상이다. 누가? 기업이, 자본이! 아무 생각없이 자..

칼럼읽다 2023.12.25

냉장고가 만든 도시

냉장고가 만든 도시 임우진|프랑스 국립 건축가 자동차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도시에 살고 있을까. 빨라야 시간당 4㎞ 걷는 보폭으로 2시간은 족히 걸릴 용산에서 역삼까지 매일 출퇴근할 리는 만무하니, 차가 없었으면 강남이 개발되었을 리도 분당, 일산 같은 신도시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보다 몇십배는 빨리 달리는 자동차 덕에 땅값 싼 시외에 집을 싸게 지어 많은 사람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일자리가 몰려있는 도심까지 지리적 거리를 시간적 거리로 치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시 외곽이라도 집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출퇴근 때 교통지옥의 굴레에 빠졌다는 사실 사이에서 반론이 이어지겠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그런데 자동차만큼 자주 회자하지 않지만 그 못지않게..

칼럼읽다 2023.12.24

정부 뒷걸음질에 ‘일회용컵 없는 제주’ 무너질 판

정부 뒷걸음질에 ‘일회용컵 없는 제주’ 무너질 판 일회용컵 보증금제 잠정 중단 알리는 제주 모 카페. 연합뉴스 [왜냐면] 한정희 | 예비사회적기업 푸른컵 대표 “제주도 분들은 좋겠어요. 다회용컵도 많이 쓰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되고, 나도 제주 살고 싶어요!” 지난봄, 서울에서 온 아무개 환경단체 간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더 이상은 못해요. 보증금제에 참여하는 곳만 계속 피해를 보잖아요. 하려면 다 같이 해야죠.” 이건 며칠 전, 제주도의 한 카페 사장님이 쏟아 놓은 하소연이다. 필자는 2년 전 ‘일회용컵 없는 제주’를 꿈꾸며 다회용컵 공유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적잖은 변화를 목격했다. 제주도의 차량이나 사무실에서는 유명 커피 브랜드의 흰색 재사용(리유저블) 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칼럼읽다 2023.12.23

참 군인 김오랑과 비겁했던 그의 동기생들

참 군인 김오랑과 비겁했던 그의 동기생들 영화 '서울의 봄'이 대흥행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 정해인은 짧은 배역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해인이 연기한 특전사 소령 오진호의 실제 인물은 김오랑 소령이다. 경남 김해 출신인 김오랑 소령은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한 해 늦게 졸업했지만, 김해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수재들이 모이던 부산대 공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다. 학비가 무료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제2보병사단 수색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그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시작으로 특전사령부 작전장교와 정보장교를 지냈다. 군의 엘리트 코스인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제5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거쳐 1979년 정..

칼럼읽다 2023.12.23

‘한강의 기적’ 축복과 저주

‘한강의 기적’ 축복과 저주 입력 : 2023.12.19 20:12 수정 : 2023.12.20. 09:58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서울에 살면서 지방을 찾는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사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지방 사람은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긴 하지만, 내심 “그럼 네가 내려와서 살아봐라!”라고 말해주고 싶어한다. 근데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법칙인가 보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가 남긴 다음 명언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시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실은 그가 시골이 가장 좋아지는 것은 도시에서 시골에 관해 배우고 있을 때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선거가 다가오면 거의 예외 없이 벌이는 이벤트가 ‘서민 코스프레’와 더불어 ‘공동..

칼럼읽다 2023.12.23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입력 : 2023.12.21. 20:38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트렘펫은 가장 높은 음을 내는 땡초 같은 금관악기다. 얼마 전 감동적으로 본 영화 에는 조금 서글픈 일화도 있다. 모리코네가 음악에 입문한 건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 덕분이다. 어느 날 어머니의 말씀. 얘야, 아버지도 함께 연주하면 안 되겠니? 아들은 아무 대꾸를 않는다.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들. 이제 함께하기에는 실력의 차이가 생겨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는 부자(父子) 음악가의 영화다. 집에서는 식구이지만 밖에서는 꿈의 무대를 두고 은근히 경쟁한다. 둘 사이에도 시기와 질투, 두려움과 동정심이 있다. 유명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내정된 아들. 그런데 그만 아버지에게로 잘못 전화가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너무나 유명한 화..

칼럼읽다 202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