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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그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입력 : 2023.12.22 22:09 수정 : 2023.12.22. 22:30 한민 문화심리학자 영화 의 기세가 심상찮다. 원래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현대사나 정치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은 드물다. 은 훨씬 더 앞당겨졌을 수 있었던 서울의 봄을 십수 년이나 늦춘 1979년 12월의 그 사건을 다룬 영화다. 40년도 더 된 이야기에서 21세기의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900만명을 넘은 관객들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과정의 허술함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어설픈(?) 시도를 몇몇 사람들의 오판으로 그르친 아쉬움은 그 뒤로 이어진 해당 일당들의 뻔뻔함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

칼럼읽다 2023.12.23

마땅한 벌과 호모 나랜스

마땅한 벌과 호모 나랜스 입력 : 2023.11.23. 20:23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악당이 성공할수록 작품도 성공한다.”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은 1939년 컬럼비아대학교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악은 입체적이다. 선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이야기는 밋밋하다. 심지어 아동을 위한 이야기에도 악당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건 악 자체라기보다 처단이다. 악당이 응분의 처벌을 받을 때 분노와 몰입에 쓴 감정이 보상받는다. 미국의 작가 윌리엄 플레시는 이런 과정을 가리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ing)라고 부른다. 악당이 처벌받도록 이야기가 진화한 이유를 인류의 생존술로 본 것이다. 영어 표현 중에는 ‘마땅한 벌’을 의미하는 단어(comeuppance)가 있다. ..

칼럼읽다 2023.12.23

책과 출판에 대하여

책과 출판에 대하여 입력 : 2023.12.20 22:30 수정 : 2023.12.20. 22:36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어쩌다 보니 책과 출판을 말하는 자리에 꾸준히 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맘때면 올해의 출판 트렌드와 내년을 전망하는 자리가 꾸준하다. 책을 출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에 나올 책들은 목록뿐 아니라 대략의 일정까지 결정되어 있을 터, 실제로 내년에 세상에 나와 독자를 만날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자료 취합 과정과 각 출판사의 정보 공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 각 언론사와 몇몇 서점에서 개별 자료를 취합하여 전하는 소식 정도로 아쉬움을 달..

책이야기 2023.12.23

한 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한해를 되비추는 예술의 힘 [크리틱]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12월의 첫 주말, 저녁 산책을 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대립과 증오로 넘친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구촌 두곳에서는 극심한 증오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또 전쟁은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문화전쟁에 가까운 서로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 커진 느낌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사회집단 간 갈등에서 유래하는 문화전쟁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곳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성,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이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대립이 격화되어 사회의 생산적 동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갉아먹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증오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미움의 정서, 그로 인한 ..

칼럼읽다 2023.12.22

청계산의 낙타

청계산의 낙타 입력 : 2023.12.14. 20:45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희붐한 햇살이 창문을 두드릴 때 배낭을 꾸려 청계산을 오른다. 식물탐사대의 송년 번개모임. 헐떡헐떡 순한 짐승처럼 정상 근처 돌문바위를 지나다가 아이쿠, 낙타를 만났다. 산중 가게 좌판에 몽골 낙타털 양말이 진열되어 있지 않겠는가. 발목 근처에 낙타가 선명했다. 그 어디에 있든 낙타는 힘이 세다. 상표와 로고만으로 자꾸 저를 생각나게 했다. 아침의 기립부터 지금의 융기까지, 오늘의 내 행각이 아연 낙타와 엮이기 시작했다. 맞춤하게 떠오른 한 편의 시. “낙타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툭 던지는 저 첫마디가 참으로 아득하다. 그래, 오늘 나도 신분당선 전철을 타고 저승 근처..

칼럼읽다 2023.12.19

망설이는 사랑

망설이는 사랑 입력 : 2023.12.04 20:29 수정 : 2023.12.04. 20:30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안희제 작가는 망설임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았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수록 거칠게 행동하지 않고 쉬이 움직이지 않는 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단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망설이는 모습. 그가 말하는 사랑의 숭고함과 어려움은 모두 망설임에 있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요즘, 크리스마스 노래가 일찍이 울려 퍼지는 카페에 앉아 허브차를 두 손 가득 꼭 껴안고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나를 향해 기꺼이 망설여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망설이는 인연들은 상대가 어려움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기꺼이 함께 속을 태우는 표정을 나누곤 했다. ‘이렇게 저렇게 처신하라..

칼럼읽다 2023.12.19

작가 된 아이들의 소감 '이 수업 다신 안 들을래요'

작가 된 아이들의 소감 '이 수업 다신 안 들을래요' [2023년 올해의 ○○] 24명 중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낸 책들을 소개합니다 23.12.17 14:44l최종 업데이트 23.12.18 11:43l 장순심(baram1177) 2023년의 출판시장이 위기라고 한다. 출판 매출은 5% 내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2021년부터 연속 3년간의 침체라고 한다. 거기에 제반 비용(제작과 물류, 종이)의 인상은 이익률의 감소로 연결된다. 출판에 종사하는 우수한 인력들은 자연스럽게 타 업종으로 유출되고, 출판시장은 총체적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출판시장의 이러한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관심이 크다. 많은 이들이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지인들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

책이야기 2023.12.18

멀티태스팅

멀티태스팅 이집트 벽화, ‘저글링하는 여자들’. 기원전 2천년 추정.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지난달 서평을 두편 쓸 일이 있었다. 같은 곳에서 온 청탁으로, 물론 마감일자도 같았다. “네 그날 보내 드릴게요.” 대답은 쉬웠으나 실제로는 바로 착수할 수 없었다. 도착한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일을 끝내려면 먼저 책을 한권 한권 읽고, 이어서 서평을 한편 한편 쓰는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걸 몰랐을까?) 그동안 다른 무엇을 읽거나 쓴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여러 일이 동시에 떨어질 때 몸이 굳어 버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무튼 원고는 그 날짜에 들어갔다. 그러나 머뭇거리는 데 일주일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 동..

칼럼읽다 2023.12.18

겨울 외투가 두껍고 어두운 까닭

겨울 외투가 두껍고 어두운 까닭 입력 : 2023.12.06. 20:43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겨울이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하고 집을 나서니 코끝 쨍한 아침 공기가 나를 맞는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을 뭉쳐 시린 손은 따뜻한 편의점 캔커피로 녹인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몸으로 잘 알지만, 도대체 온도가 높고 낮은 것이 물질의 어떤 객관적인 특성에서 비롯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낸 뒤로도 거의 200년이 더 지난 다음이다. 인류는 천체의 움직임을 상당한 정확도로 예측했지만, 눈의 차가움과 커피의 따뜻함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몰랐다. 어쩌면 직관적 감각의 명확함이 물어야 할 질문을 떠..

칼럼읽다 2023.12.18

목소리의 목소리가 되자

목소리의 목소리가 되자 입력 : 2023.12.17 20:22 수정 : 2023.12.17. 20:23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내가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나서 어머니는 그런 당부를 하셨다. 미움받게 쓰지 말고 좋은 말만 쓰라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어련히 알아서 잘 쓰겠냐마는 세상이 하도 야박하니 안 그러냐. 하지만 엄마, 글 쓰는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으면 글도 망하고 세상도 망해요. 나는 대답했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어머니는 이제 글을 읽지도 못하는데, 마음이라도 편하시도록 네, 엄마, 그렇게 할게요, 그러고 말 걸 후회도 했지만, 어쩌면 저 대답은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4년 가까이 이 지면에서 4주에 한 번 칼럼을 썼고, 오늘 마지막 칼..

칼럼읽다 20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