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47

찾아보기 [크리틱]

찾아보기 [크리틱] 수정 2024-04-10 18:43 등록 2024-04-10 15:47 마르티니, ‘신중국지도’(1655)의 찾아보기 첫 페이지. 위키미디어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찾아보기(색인, 인덱스)는 책에서 논의된 사항들을 배열하고 그것이 어느 페이지에 있다고 알려주는 책의 한 구성 요소이다. 주로 비소설과 학술서 끝에 들어간다. 소설에 들어간 경우는 없나? 있기는 하다. 나보코프의 소설 ‘창백한 불꽃’(1962)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1)편집자 서문. 2)존 셰이드의 장시 ‘창백한 불꽃’ 전문. 3)주석. 4)찾아보기. 물론 셰이드는 가공의 인물이다. 이런 ‘가공의 책’ 설정이 새롭지는 않다고 해도 찾아보기가 들어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설정에 선수였던 보르헤스조차 찾아보..

책이야기 2024.04.16

“아 유 얼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아 유 얼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수정 2024-04-14 18:47 등록 2024-04-14 18:00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20대 딸은 인간이 나오는 영화를 꺼린다. 잔인하고 복잡해 머리가 아프단다. 대신 동식물이 나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딸이 유기냥 집사가 된 이유일 것이다. 개와 로봇이 다정하게 손잡고 서로의 눈을 맞추고 걸어가는 포스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로봇은 어릴 적 딸이 좋아했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로봇을 닮았다. 저 개는 또 어디서 봤더라, 너무 친숙하다. 2디(D)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에 끌린 이유다. 딸의 취향을 저격이라도 하려는 듯 이 영화엔 인간이 없고, 인간의 말(대사)이 없고, 인간이 경..

칼럼읽다 2024.04.15

늘 '최대 불황'이란 출판계,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들

늘 '최대 불황'이란 출판계,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들 [서평] 종이책은 언제까지 '믿을 만한' 매체일까... 24.04.13 19:13l최종 업데이트 24.04.13 19:13l 김경훈(insain)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출판계에서는 흔히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로 그 해를 평가한다.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긴 해도, 저 표현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리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해마다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동료 편집자들을 만나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뭘 하는 걸까'에 대해 서로 자조 섞인 푸념을 털어놓기 일쑤다. 현 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트렌드를 고려해 아이템을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며, 원고를 검토해서 수정하는 등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내지만, 그렇게 만든 책이 ..

책이야기 2024.04.14

읽지 마, 연결되지 마 [김소민의 그.래.도]

읽지 마, 연결되지 마 [김소민의 그.래.도] 수정 2024-04-11 18:50 등록 2024-04-11 18:39 현행 도서정가제는 할인 여력이 있는 판매자에게만 유리하다. 한 동네책방의 모습. 정용일 기자 김소민 | 자유기고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지난 2월 경남 남해, 을씨년스러웠다.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그때 나는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마을을 품은 남해에 반했다. 그리고 1년 뒤 남해로 이사하기로 한 거다. 20여명이 돈을 모아 동네책방을 열기로 했다. 2월 회색빛 바다를 끼고 진눈깨비에 따귀를 맞으며 남해 동네책방들을 돌아다녔던 까닭이다. “돈 벌기를 포기했구나.” 내 계획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요약하면 이랬다. 맞는 말이다. 인구 4만명인 남해에 도서관은 딱 두 군데다..

책이야기 2024.04.14

이분되지 않을 자유

이분되지 않을 자유 입력 : 2024.04.10. 22:54 성현아 문학평론가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손꼽히는 정지용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설령 그를 잘 모른다 해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향수’의 구절만큼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몇년 전, 정지용의 문학을 주제로 하여 학위논문을 쓰던 때에는 시인이 멀게만 느껴졌었다.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은 다작하였고, 일본어와 한자, 영어로도 글을 썼기에 연구자의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다수의 작품과 방대한 양의 선행 연구를 읽어내며 문학사적 의미를 유추하는 데 급급했다. 오랜 시간 그를 연구하다 보니, 최근에는 관점이 달라졌다. 글 뒤에 살아 숨 쉬는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지용은 문학이 예술성과 자율성, 정치성..

책이야기 2024.04.13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입력 : 2024.04.11 20:18 수정 : 2024.04.11. 20:21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누구는 돈이 너무 많아 문제..

칼럼읽다 2024.04.13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입력 : 2024.04.11 20:20 수정 : 2024.04.11. 20:22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농협은 어떻게 하나로마트의 간판을 내걸 수 있겠나. 나는 어디에서 질 좋은 삼겹살을 한 근 끊을 수 있겠나.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디서 후룩후룩 해장국으로 하루의 허기를 달랠 수 있겠나. 해는 서해에서 찌든 때를 씻고 다시 맑은 얼굴로 동해를 비춘다. 히읗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하루를 호출할 수 있겠나. 나이 들어 헛헛해질수록 가까이해야 하는 건 국어사전이다. 그림자가 반듯해야 그 모양이 단정하듯 적확한 말이라야 정확한 뜻이 가능하다. 초등학교 땐 전과를 보고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사전에 제법 손때를 묻혔다. 철저히 외면했던 국어사전. 그러다..

칼럼읽다 2024.04.12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입력 : 2024.04.10 22:15 수정 : 2024.04.10. 22:17 서진영 저자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

칼럼읽다 2024.04.11

콩나물 한 봉지 들고 너에게 가기

콩나물 한 봉지 들고 너에게 가기 입력 : 2024.04.07 20:20 수정 : 2024.04.07. 20:21 이설야 시인 가령 이런 것 콩나물시루 지나는 물줄기 ― 붙잡으려는 ― 콩나물 줄기의 안간힘 물줄기 지나갈 때 솨아아 몸을 늘이는 ― 콩나물의 시간 닿을 길 없는 어여쁜 정념 다시 가령 이런 것 언제 다시 물이 지나갈지 물 주는 손의 마음까진 알 수 없는 의기소침 그래도 다시 물 지나갈 때 기다리며 ― 쌔근쌔근한 콩나물 하나씩에 든 여린 그리움 낭창하게 가늘은 목선의 짠함 짠해서 자꾸 놓치는 그래도 놓을 수 없는 물줄기 지나간다 다음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므로 생의 전부이듯 뿌리를 쭉 편다 아 ― 너를 붙잡고 싶어 요동치는 여리디여린 콩나물 몸속의 역동 받아, 이거 아삭아삭한 폭풍 한 봉지! ..

책이야기 2024.04.10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입력 : 2024.03.12 21:59 수정 : 2024.03.12. 22:05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말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특정 경험, 특정 정보, 특정 이념, 특정 세력, 특정 정파, 특정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행태인 ‘반지성주의’가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놓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진영론과 음모론이 결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강요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권했던 ‘판단 중지(epoche)’도 도움이 된다. 가끔은 판단을 멈추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판단 중지’란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회의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요구하기에 쉬운 일은 ..

칼럼읽다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