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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만든 책은 처음... '오히려 좋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만든 책은 처음... '오히려 좋아' [편집자가 독자에게] 조기현, 홍종원 대담집 를 펴내며 24.02.02 20:26l최종 업데이트 24.02.02 20:26l김경훈(insain) 1월 중순 출간된 대담집 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했던 솔직한 생각이다. 원래 나는 조기현 작가님이 에 쓰신 '영 케어러'라는 연재 기사를 묶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는데(이매진 출판사에서 이란 제목으로 2022년 2월에 출간됐다), 조 작가님은 내게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원 작가님과 돌봄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대담집을 제안하셨다. 둘만 아는 이야기로 빠지지 않도록 진행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셨다. 조 작가님이 쓰신 , 홍 작가님이 에 연재하신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두 ..

책이야기 2024.02.04

말의 힘과 말의 일

말의 힘과 말의 일 입력 : 2024.01.02. 20:10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말의 힘은 말의 일에서 드러난다. 키케로의 말이다. “사람의 모임과 결합은 가장 잘 유지된다. 누가 되었든 가장 가까운 정도에 따라 그에게 가장 많은 좋음이 주어질 때에. 하지만 사람을 연대하고 결합하는 본성의 원리는 더 높은 차원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사회성에서 드러나는데, 그 밧줄이 이성이고 언어이다. 가르치며 배우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판단한다. 이것이 사람을 서로 묶고 결합시킨다. 본성의 어떤 사회성 덕분이다. (…) 들짐승도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자나 말이 정의, 평등, 좋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이성과 언어를 결여하기에.” ( 1권 50장) “가장 가까운..

칼럼읽다 2024.02.04

뷔페에 갔다가 2

뷔페에 갔다가 2 주상태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마음속 그림을 그리고 기억을 남겨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인증 샷 바다로 갈까 하늘로 갈까 아니면 땅 위 세상을 초토화 시킬까 당기는 것은 욕망 천천히 다가가기 위한 시간을 번다 얼음 잔뜩 넣은 음료수는 소화를 도우고 새로운 요리를 기다리는 것은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욕망을 억제해야만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초밥으로 채우기에는 배가 부르고 밥을 버리기에는 영광굴비가 아쉽고 마늘탕수육은 혼자 먹기엔 씁쓸하여 탄수화물이 없는 메밀로 간다 무즙으로 녹색으로 포장된 메밀로 가서 꼭꼭 눌러 담는다 욕망으로 담고 욕망으로 비운다

시를쓰다 2024.02.04

이태준과 좋은 글

이태준과 좋은 글 입력 : 2024.01.31. 20:22 인아영 문학평론가 고통받지 말라(Don’t suffer). 어느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들은 말이다. 빠르고 세게 연주할 때 거의 피아노 건반을 부술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가기 쉽지만, 그러면 연주자가 괴롭기만 할 뿐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조언이었다. 정확히는 힘을 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영할 때 힘을 빼야 부드럽고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그래야 풍부하고 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마음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망친다. 하지만 글쓰기가 직업이면서도 모니터 앞에서 지나치게 고통받지 않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동시에 궁금했다. 고통..

책이야기 2024.02.03

맑은 하늘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맑은 하늘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주상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날 맑은 하늘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하늘은 저렇게 맑은데 하늘은 저토록 푸른데 밀려올 비구름이 두려워 하얀 뭉게구름 뒤에 가려진 친구가 생각나 하늘 올려보는 일이 두렵다 나 혼자 하늘을 보는 것 같아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한 달 봉급과 새벽까지 포장마차에서 밤새는 제자의 어머니가 생각나 도대체 하늘이 있기나 한 건지 새벽이 오기나 하는 건지 새벽이면 깨워달라는 고3딸의 목소리가 조금 귀찮아질 때면 차라리 비라도 내리길 바라본다 신세타령도 좋고 세월타령도 좋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 나를 옥죄는 자유도 잊을 수 있기에

시를쓰다 2024.02.03

스마트폰과 맞바꾼 목숨들

스마트폰과 맞바꾼 목숨들 입력 : 2024.02.01 20:09 수정 : 2024.02.02. 09:13 최정화 소설가 스마트폰은 뭘로 만들까? 플라스틱, 유리, 그리고 60여종의 금속이다. 볼리비아의 세로리코산은 무분별한 광물 채굴로 인해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했다. 무너져 내릴 경우 시 전체가 없어질 거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규소폐증이라는 폐질환을 앓고 있는데, 평균수명이 40세에 불과하다. 공기가 희박한 해발 4600m 고도에서 어린아이들 3000명이 일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가장 좁고 깊은 곳으로 간다. 콜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비지 광산에서 채굴하는데, 이 작업으로 인해 고릴라의 90%가 사라졌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장집단의 통제를 받으며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애플 본사는 편집증에 가까..

칼럼읽다 2024.02.02

부개역에서

부개역에서 주상태 찢어지는 라디오 소리가 고물을 잔뜩 실은 하루 모아 하루 버티는 폐휴지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다 코뱅맹이 소리로 앵앵거리는 아나운서는 삶과 무관한 뉴스를 흘리고 있다 버스는 사람들을 한 덩이 뱉어내고 휴식을 취하고 지하철로 올라가는 삶이 바쁜 에스컬레이트는 쉼없는 펌프질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가쁜 숨을 몰아 쉰다 부개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세상은 바쁘기만 하다 한 푼 돈이 아쉬워 각박해진 세상 두 푼 버는 죄로 주저하다가 거칠어지다가 투박해진 삶은 에스컬레이트에 오르지 못하고 쓰레기통 휴지도 되지 못하고 고물상 폐휴지로 담기지도 못하면서 잔뜩 머금은 바람에 날리고 만다

시를쓰다 2024.02.02

두통에 시달리다

두통에 시달리다 주상태 평생 두통에 시달린 작가의 글을 읽다가 나도 작가였으면 하는 꿈을 꾼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연신 침을 바르고 세상 밖으로 침을 튀기면서 호소하다가도 언젠가 뒤돌아설 것 같은 사람들을 보다 보면 머리가 아파온다 가족의 아픔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강한 사람이었다가도 이기지 못함을 알고 나면 나도 작가였으면 한다 수천 만리 지구 속을 여행하다가 수만 리 우주 밖을 유영하다가 뇌가 시키는 대로 뇌세포가 꿈틀대는 대로 우울하게 만든 사람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흘린 땀은 여행의 즐거움 식은 땀은 여행의 고단함 비 갠 날 아침처럼 다시 돌아온 나의 삶을 보면 간질거리는 자유를 느끼고 두통에 시달리는 것을 즐기는 때가 오면 삶이 조금 보일까 보다

시를쓰다 2024.02.01

행복, 애쓰지 않으면 머물 수도 없다

행복, 애쓰지 않으면 머물 수도 없다 입력 : 2024.01.31 20:17 수정 : 2024.01.31. 20:18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의 첫 문장이다. 가정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병에 걸려서, 외로워서…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행복은 어쩌면 높은 산봉우리 정상, 손바닥만 한 좁은 땅 같은 곳일지 모른다. 동쪽으로 삐끗해 한 걸음 옮기면 건강을 잃는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오랜 친구 한 명을 잃는 남쪽 방향 한 걸음으로 큰 불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 행복이라는 불안정한 산꼭대기에서 저 아래 놓인 제각각 다른 수많은 불행의 골짜기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지천이다. 어..

칼럼읽다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