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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는 모른다 입력 : 2024.02.04 20:31 수정 : 2024.02.04. 20:32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연말에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버스, 트램(전차), 지하철, 지역 일반열차, 광역 고속열차, 비행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낯설었던 것은 어디에나 유아차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대중교통, 특히 버스에서 유아차를 만나는 건 진짜 드문 일이다. 한국의 대단한 저출생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건 이상한 일이다. 1990년대 말 처음 방문한 유럽 미술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현실은 그와 반대였다. 버스, 지하철, 기차에서 휠체어를..

칼럼읽다 2024.02.12

수업에 대한 짧은 명상

수업에 대한 짧은 명상 주상태 참 이상한 일이다 수업이 보인 어느 날 아이들이 날개를 달고 교실 속으로 들어온다 내 가슴속에서 비행기를 탄다 정말 이상한 날이다 수업은 언제나 고백 같은 것이었는데 수업은 수 없는 날들의 고독 같았는데 문득 말을 걸어온 햇살 좋은 날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그냥 햇살 뜨거운 날 현관 앞에서 개미를 잡다가 시를 만나고 개미와 아이들과 사랑에 빠지듯 아무것도 들려주지 않지만 아이들은 행복해한다 교실에서 삼겹살을 먹기도 하고 별모양 세모 네모모양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함께 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비빔밥을 함께 만들어 먹고 비빔밥의 영양가를 논하지 않아도 국어시간이라고 하고 가정시간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 내리는 날 운동장에서 첨벙첨벙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고 눈사람을..

시를쓰다 2024.02.12

좀비 연어의 죽음

좀비 연어의 죽음 입력 : 2024.02.07. 19:53 이은희 과학저술가 드넓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연어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운명의 스위치가 켜진다. 바로 자손의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절대 명제에 따라, 알을 품고 태어난 고향 개울을 찾아 회귀하라는 본능의 스위치다. 한 번 켜진 스위치는 절대로 꺼지는 법이 없다. 바다에서 강의 상류에 이르는 머나먼 여정도,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고생길도, 그 길목에서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 포식자에 대한 공포까지도 이들의 회귀 본능을 꺾지는 못한다. 이처럼 험난한 귀향길을 헤치고 고향에 도착할 즈음이면, 같이 출발했던 동료들 중 태반은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도착한 이들도 상처투성이에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이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 강바닥에..

칼럼읽다 2024.02.11

떡국 혹은 그것의 방정식

떡국 혹은 그것의 방정식 입력 : 2024.02.08. 18:26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내 또래의 경상도 특히 부산 친구들 영어 발음이 약간 엉망인 건 억센 사투리 탓이다. 영어보다도 수학 공부할 때 더 자주 사용했던 말, ‘이꼬루’ 혹은 ‘이꼴’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정확하게 철자를 적으면 equal, 현지식에 가급적 가깝게 발음하면 이퀄. “두 식 또는 두 수가 같음을 나타내는 부호(=)를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이 기호는 수학의 방정식에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일차방정식 ‘x+1=4’는 ‘엑스 더하기 일 이꼬루 사’로 읽은 뒤 부리나케 x의 값을 찾아 볼펜을 굴려야 했던 것. 돌이켜 보면 미지수 엑스는 중학생이던 나의 생활에 불쑥 뛰어들었다. 그 이후 무시로 ..

칼럼읽다 2024.02.11

수선을 떨다

수선을 떨다 주상태 수선은 그냥 수선일 뿐이다 결코 아름답지도 결코 노래하지도 결코 미안해하지 않아야 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수선 떨지만 그것은 애교 가끔 나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소란스러움 속 자유를 구속하는 부산함은 웃음 아닌 절망을 부르지만 아름다운 수선은 꽃을 피우고 이야기를 낳고 차 한잔을 건네고 자전거를 타고 날게 한다 수선 속에서 시를 먹고 친구도 만나고 아몬드 초콜릿 품 안에서 왈츠를 듣는다 바람 차가운 날 갑자기 수선 떠는 것이 아름답지 않음에 목이 메어오고 가슴은 계절 속에 흩어진다

시를쓰다 2024.02.11

내릴 수 없는 깃발 ‘대안교육’의 지속을 위해

내릴 수 없는 깃발 ‘대안교육’의 지속을 위해 수정 2024-02-08 18:37 등록 2024-02-08 09:00 ‘와크(WAC: Weekend Arts College) 공연예술·미디어학교’는 ‘와크 아츠’로 이름이 바뀌어 2024년 현재까지 변함없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 실리아 그린우드 선생은 은퇴했으나 위치는 캠던구의 더 나은 다른 장소로 이전한 상황이다. 자세한 정보는 https://www.wacarts.co.uk 누리집 참조. 누리집 갈무리 [세상읽기] 이병곤|제천간디학교 교장 딱 한번 마라톤 완주를 해본 적 있다. 2009년 아일랜드 수도에서 열린 더블린마라톤에서였다. 뛰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로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우편물 한뭉치가 날아왔다...

칼럼읽다 2024.02.10

수다를 떨다

수다를 떨다 주상태 막혀있던 혈관이 길을 찾은 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삶의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것이 삶인 것처럼 진지하지도 않고 그것이 꿈인 것처럼 간절하지도 않지만 차 한 잔 건네는 시간 수다는 삶이 된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있을수록 막히기 쉬운 법 정체되어 있는 순간 박차고 나갈 것 솟구치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 수다는 과자 부스러기 수다는 디저트 수다는 휴식 수다는 달콤한 미소 때로는 수다도 삶이 된다 수다를 떨면 삶이 꿈이 된다

시를쓰다 2024.02.10

개, 소, 산천어

개, 소, 산천어 입력 : 2024.02.07. 20:00 한윤정 전환연구자 (Leave the World Behind, 감독 샘 에스마일)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2023년 11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인기 영화인데 제목은 “세상을 뒤로하고 떠나라”, 즉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마음껏 휴가를 즐겨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연 영화는 중산층 뉴요커 부부(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지친 일상을 뒤로한 채 해변의 고급저택을 빌려 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번잡한 도시와 평화로운 자연, 쾌적한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이어지는 두 세계다. 그런데 ‘자연’에 도착하자마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다. 먼바다에서 시커멓고 거대한 유조선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더니 사람들이 ..

칼럼읽다 2024.02.09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주상태 내 나이 꺾어지는 즈음에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삶을 속이지 말기를 그대는 삶에 속아 넘어가지 말기를 삶이 그대를 죽일지라도 그대는 삶을 죽이지 말기를 그대는 삶 때문에 죽음을 택하지 말기를 가끔 날아가는 새에게 소리치기도 한다 내 나이 결혼할 즈음에 자주 하는 일이 있었다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을 보면서 내 삶을 속이면서 혼자 집으로 달려가 라면을 먹은 적이 있다 라면은 몇 그릇째 비워도 머릿속은 비워지지 않은 날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앞으로만 달리는 나이에도 내 삶은 뒤를 바라보았고 뒤로 돌아가는 나이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는 삶을 속이지 않을 생각이다. 뒤도 돌아보..

시를쓰다 2024.02.09

꼭 기름으로 튀겨야 하나?

꼭 기름으로 튀겨야 하나? 입력 : 2024.02.08. 18:26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튀김을 하려면 먼저 식재료를 손질하고, 튀김옷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속이 깊은 용기에 기름을 담고 고온으로 가열한 후, 튀김옷을 입힌 식재료를 투입합니다. 과정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렇게 만든 튀김을 한입 베어 물면 그간의 노고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뒷정리입니다. 특히 남은 기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항상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제품이 있습니다. ‘에어프라이어’인데요, 공기를 이용하는 튀김기란 뜻이지만, 사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그리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튀김은 식재료가 푹 담길 정도로 충분한 양의 기름을 이용해 고온에서 조리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어프라이..

칼럼읽다 202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