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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종이책,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입력 : 2024.02.07 19:56 수정 : 2024.02.07. 19:58 장동석 출판평론가 중국 서진(西晉) 시대, 좌사(左思)라는 문장가가 있었다. 그가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써낸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 도읍의 풍물에 관한 책 는 당대 지식인들의 총애를 받는 작품이었다. 그 책을 베껴 읽는 이들이 늘어나자 당시 도읍이었던 낙양의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낙양지귀(洛陽紙貴), 즉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라는 말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시때때로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때면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말이었는데, 근자에는 자주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도 없는데,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지난 몇년 사이 종이값은 50%가량 올..

책이야기 2024.02.08

삶을 토해내다

삶을 토해내다 주상태 차라리 연체된 책처럼 내 삶이 100일쯤 연체되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눈을 뜨지만 자리 보전하며 이불을 박차지 못하는 날에도 “힘 내요.” “축 처진 모습 보기 안좋아.“ 진심으로 느껴지는 말 한마디에 참기름에 말라비틀어진 밥을 비벼 이미 굳어버린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지금의 내 삶처럼 모든 것이 10년쯤 토해낼 것도 알지만 삶이란 그렇게 되새김질 하는 것도 안다 꾸역꾸역 삼킨 것은 토해내고 비우고 또 비우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비우고 나면 내 마음에도 평화가 온다는 것을 너무 늦은 나이라고 하기엔 철없어 보이지만 삶이란 결국 토하는 것 지금까지 가졌던 것 누렸던 것 눈물 나던 것 하나로 모아 토하는 것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 그 자리에 피는 한 송이 꽃만이 알 수 있는 ..

시를쓰다 2024.02.08

오히려 길치여서 쓸 수 있었던 서울 산책길 이야기

오히려 길치여서 쓸 수 있었던 서울 산책길 이야기 [책이 나왔습니다] 24.02.01 14:05l 최종 업데이트 24.02.01 14:33l 이상헌(shee) ▲ 길 위에서 배우는 교과서 : 서울 편 (북스토리) 지난 3년간 50여 꼭지로 연재를 했던 '단칼에 끝내는 서울 산책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기사에는 넣지 못했던 사진과 상당 부분의 내용을 바꿔서 출판했습니다. ⓒ 북스토리 이 책으로 켜켜이 쌓인 역사의 한 층을 벗겨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한민족의 모든 행위와 인프라가 흥 멸하면서 생긴 역사가 겹겹이 지층을 덮고 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디면 역사의 궤적이 드러나고 두 걸음 옮기면 흐름이 보입니다. 50 꼭지, 즉 50여 장소를 찾은 발걸음과 200여 장의 사진으로 총 300쪽..

책이야기 2024.02.07

삶을 얻는다는 말

삶을 얻는다는 말 입력 : 2024.02.06 20:12 수정 : 2024.02.06. 20:13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8세기 문인 김양근은 서재 이름을 ‘득생헌(得生軒)’이라고 붙였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는 뜻으로도 쓰일 법하지만, 이 득생이라는 말에는 출처가 있다. 도연명은 세상을 버린 자신의 심정을 망우물(忘憂物) 즉 술에 띄워 멀리 보내며 이렇게 노래했다. “해 지고 만물의 움직임이 잦아드니/ 새들 지저귀며 숲으로 돌아오네./ 동헌 아래서 내 멋대로 휘파람 부니/ 이제야 다시 이 삶을 얻었구나.” 세속을 훌쩍 벗어난 곳에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얻었다는 뜻을 가져온 것이다. 옛 문인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채 분주하게 살아가면서도 언젠가는 유유자적한 나만의 삶을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리..

칼럼읽다 2024.02.07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주상태 늦은 나이에 하는 사랑은 안타까움에 눈물젖는 애틋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가슴 졸이기는 매한가지인 듯 사랑하는 일보다 필요한 게 없을지라도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소중한지 모를지라도 사랑보다 일이 먼저라는 고민이 있을지라도 사랑은 항상 찾아오는 법 사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 한강을 함께 달릴 여인은 없을지라도 달려야 하고 밥상을 함께 할 사람은 없을지라도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면 사랑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으로 잊혀진 계절처럼 마음 졸이기보다 가슴 졸이기보다 처절한 삶의 무게만큼 아프게 짓누르는 것 늦은 나이에도 사랑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행운 늦은 계절에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눈물일지도

시를쓰다 2024.02.07

횡단보도 조금만 빗겨나 걸어도 보행자 책임…합당한가?

횡단보도 조금만 빗겨나 걸어도 보행자 책임…합당한가? 수정 2024-02-01 18:40등록 2024-02-01 18:14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심재익 |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행자는 보도로 걷고 도로를 횡단할 때는 횡단보도를 이용하게 된다. 보도는 도로를 따라서, 횡단보도는 도로를 가로질러 만든 보행 공간이다. 법에서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안전표지로 표시한 도로의 부분이라 규정하고 있다.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나면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 따라 차량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해서는 아니되므로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차량의 일방과실로 본다. 횡단보도는 백색으로 노면의 전폭을 가로질러..

칼럼읽다 2024.02.06

이 추운 날, 돼지국밥

이 추운 날, 돼지국밥 입력 : 2024.02.01 20:09 수정 : 2024.02.01. 20:13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조리법에 무슨 차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부산역 구내 돼지국밥은 따로 밥이 나오는 것보다 토렴한 것이 천원 더 비싸다. 아무튼, 밥과 고기와 국물의 비율을 대강 맞춰가며 국밥을 먹을 때 어느새 아쉽게 바닥을 긁게 되고 펄펄 끓던 국물도 많이 식었다. 아무래도 숟가락이 건더기를 선호하는 와중에 국물은 좀 넉넉히 남겨두었다. 꽃산행을 가지 않는 주말이면 억울한 심사를 달래다가 주섬주섬 챙겨서 동묘 풍물시장에 가기도 한다. 이리저리 발품을 팔다가 결국 헌책방을 찾던 어느 날의 일화. 몸 하나 운신하기 힘든 좁은 서가의 시집 코너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출입구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거다. ..

칼럼읽다 2024.02.06

빨래 알아보다

빨래 알아보다 주상태 빨래를 10년 이상 해본 사람은 안다 빨래가 통속에 들어가는 것은 무작위지만 빨래줄에 매달리는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와 나의 선택에 따른다는 것을 무더운 여름날 수건은 어느새 걸레가 되다가도 어깨 위를 맴돌고 나의 어깨는 맞바람의 기세에 꺾이고 만다 힘 빠진 어깨너머 나의 청춘은 촘촘히 매달린 양말 속으로 숨어들어 다소곳한 모습으로 웃는다 나는 가끔 손빨래를 한다 내 인생을 돌아가는 드럼 속에서 잠시라도 붙잡아두고 싶으니까

시를쓰다 2024.02.06

우웨이

우웨이 입력 : 2024.01.31 20:25 수정 : 2024.01.31. 20:26 임의진 시인 가끔 인간도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봐. 동면하고 깨어나 삼일절 만세를 부르면서 싸돌아다니고파. 겨울에 달리지 않던 말이 봄에 푸른 들판을 내달리듯. 무위도식을 나쁜 뜻으로만 여기는데, 너무 조이고 바지런한 인생을 상찬하는 세태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일’은 사실 인생 모두가 바라는 바 아니런가. 중국 사람들이 ‘우웨이’라 말하는, ‘무위’의 인생 철학은 다들 알고 계실 터. 특별히 겨울 시즌에 눈보라 눈길을 피해 바깥 출타를 줄이고, ‘잘 먹고 잘살기 경쟁대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얼마간 문 닫고, ‘우웨이한 삶’을 살아보려 노력한다면 당신도 세속 사회에서 ..

칼럼읽다 2024.02.05

뷔페에 갔다가

뷔페에 갔다가 주상태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몸을 생각한 것부터가 몸을 망치는 일이었다 맛있는 것을 고민하지 않지만 맛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곳은 천국이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 높은 곳까지 인간의 손이 뻗칠 수 있는 모든 생물 심지어 화석이 된 것까지도 밥상 위에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발걸음도 가볍게 무중력 상태로 허느적허느적 마음이 가는 대로 몸도 따라간다 머리로는 몸을 생각하면서 접시 한가득 야채를 가져오지만 몇 번이나 반복되는 불고기, 탕수육, 갈비찜, 육회, 닭다리는 인간도 생각 없을 수 있다는 어차피 인간도 동물이라는 느끼는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였다 테이블 한쪽에서 당당하게 혹은 거만하게 자리하고 있는 ‘맛있게 먹는 법’은 누구의 기준인가? ‘맛있게 먹..

시를쓰다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