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79

바둑, 또 다른 이름 ‘수담’

바둑, 또 다른 이름 ‘수담’ 입력 : 2024.02.25 20:06 수정 : 2024.02.25. 20:16 엄민용 기자 지난주 국내 스포츠계는 바둑 뉴스로 출렁거렸다.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에서 신진서 9단이 중국과 일본의 최강자들을 연거푸 꺾고 한국에 우승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신 9단은 바둑 실력이 인공지능에 버금간다고 해서 ‘신공지능’으로 불린다. 하지만 혼자 중국과 일본의 최강자 6명을 연이어 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05년 ‘국보급 기사’로 불리는 이창호 9단이 이 대회에서 홀로 5연승을 거두며 한국에 우승을 안긴 일이 마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올 정도다. 그때 세운 이 9단의 기록들을 신 9단이 모두 갈아치우며 한국을 세계 바둑 최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

칼럼읽다 2024.02.26

풀빵을 위하여

풀빵을 위하여 주상태 눈물젖은 빵을 먹기 위해 애썼던 시절 사랑했던 풀빵은 어느새 붕어빵 팥빵 크림빵 옥수수빵으로 진화하여 오늘 아침 밥상에 올랐다 족발을 사달라는 딸의 문자메시지를 보고도 답장 보내지 못했던 추운 날의 일용직 아버지는 다음 메시지가 올 때까지 꺼억꺼억 울음을 삼켰다 “아빠, 고기가 아니면 잉어빵이라도 사오세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날의 아버지는 서둘러 오던 길을 되돌아가 칼날 같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침은 풀빵 3개 팥빵 크림빵 크림빵 전자렌지 속에서 제각기 사연을 가지고 돌고 또 돈다. “아빠, 옛날에는 풀빵이라고 했어요?” 방긋 웃으면서 푸짐한 밥상이라며 아빠를 위로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하는 시대 풀빵은 언제쯤 그..

시를쓰다 2024.02.26

순한 먼지들의 책방

순한 먼지들의 책방 입력 : 2024.02.18. 19:59 이설야 시인 여기저기 떠다니던 후배가 책방을 열었어. 가지 못한 나는 먼지를 보냈지. 먼지는 가서 거기 오래 묵을 거야. 머물면서 사람들 남기고 가는 숨결과 손때와 놀람과 같은 것들 섞어서 책장에 쌓고는, 돈이나 설움이나 차별이나 이런 것들은 걷어내겠지. 대신에, 너와 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지구와 함께 오늘 여기를 느끼면서, 나누는 세상 모든것과의 대화는 얼마나 좋아, 이런 속엣말들 끌 어모아 바닥이든 모서리든 책으로 펼쳐놓겠지. 그려보기만 해도 뿌듯하잖아. 지상 어디에도 없을, 순한 먼지들의 책방. (혹시라도 기역아 먼지라니, 곧 망하라는 뜻이냐고 언짢을 것도 같아 살짝 귀띔하는데, 우리가 먼지의 기세를 몰라서 그래. 우주도 본래 먼지..

책이야기 2024.02.25

책 읽는 게 뭐가 좋냐고? 미리 살아볼 수 있으니까요

책 읽는 게 뭐가 좋냐고? 미리 살아볼 수 있으니까요 [책이 나왔습니다] 를 쓰며 고려한 것들 24.02.21 16:21l 최종 업데이트 24.02.21 17:16l 박균호(bright14) 를 쓴 엘베르토 망굴엘은 자신이 현실 세상보다 독서를 통해 경험을 먼저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우리는 소설을 통해서 현실보다 더 생생한 현실을 미리 만나고 그 삶을 꿈꿔보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또 다른 실제로 작용하곤 한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의 심리를 짐작해볼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의 첫 만남 또한 소설이라는 안내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책이야기 2024.02.25

봄은 붉다

봄은 붉다 입력 : 2024.02.21 20:02 수정 : 2024.02.21. 20:16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괄목상대(刮目相對). 이 나이가 되어도 눈을 부릅뜨고 볼 일이 생긴다. 한 보름 전, 설 즈음이다. 빌딩 옆이라 빛을 조금은 손해 보는 터에 자리한 매화나무 가지가 문득 붉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에서 본 매화나무 삐죽한 우듬지는 과연 자줏빛으로 붉었다. 다른 나무도 그런가 살펴보았다. 아침저녁 나절 오가는 길목에서 부러 들여다본 나뭇가지도 붉은 게 제법 많았다. 이른 봄 전령사인 산수유도, 남천의 가지도 붉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붉은 기운이 가지 끝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꽃도 잎도 없는 겨울 끝자락 나뭇가지는 왜 그리 붉을까? 소나무 가지에 달린 솔방울을..

칼럼읽다 2024.02.25

책에 갇히다

책에 갇히다 주상태 목이 메이면 쉬어가면 되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면 되는데 책이 길을 막으면 온전히 삶이 막힌 것 같다 책을 성처럼 쌓아 가두고 한 권 한 권 책을 삼키고 책을 어르고 책으로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무너질 것 같은 벽은 다시 쌓으면 되는 것 어제 보고 싶었던 책은 오늘 만났던 책에 밀리고 내일은 다른 책 속에서 허덕인다 제목이 보이도록 할 것 친구끼리 짝을 지어둘 것 이름은 기억할 것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라도 나에게는 모두 책인걸 책에 막히면 내 삶은 정체되고 잘못 찾은 커피 자국에도 가슴 아려하고 버려진 책갈피를 책 속에서 다시 펼치려 하면서 책은 영혼의 가장 낮은 곳에서 울림을 시작하고 나를 흔들고 나를 가두고 나를 버리기도 하고 나를 막지만 책을 버리지 못하는 삶 가끔 절망이 되는..

시를쓰다 2024.02.25

한 수 접는 마음

한 수 접는 마음 입력 : 2024.02.21 20:18 수정 : 2024.02.21. 20:20 오은 시인 동네 카페, 앞 테이블에 앉은 아빠와 아이가 종이접기에 한창이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 접는 모습에서 신중함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다시 앞으로 좀 돌려보면 안 돼?” 손이 느린 아이가 아빠에게 부탁을 한다. “실은 아빠도 제대로 못 봤어. 다시 함께 보자.” 마음 너른 아빠가 아이에게 속삭인다. ‘다시’와 ‘함께’에 힘입어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영상 속 실력자가 종이 접는 모습을 바라본다. 머릿속으로는 종이를 열심히 접고 있는 1분 뒤 자기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빳빳한 종이를 보면 양가감정이 들었다. 그 팽팽함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칼럼읽다 2024.02.24

숲속의 피아노, 임윤찬의 피아노

숲속의 피아노, 임윤찬의 피아노 입력 : 2024.02.22 20:14 수정 : 2024.02.22. 20:20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남해안 어느 섬의 꽃산행은 해가 웬만큼 떠올라 저 멀리 누구네 집 엉덩이를 걷어찰 때쯤 나도 비슷하게 산으로 출발하여 서로 모른 척 하루를 보낸 뒤, 저녁 어스름 각자 헤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는 서해에서 씻고 나는 집에서 먼지 묻은 몸을 씻고, 배를 채운 뒤 사진도 정리하다 보면 아주 늦은 밤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텔레비전은 시끄럽고 떠들썩한 건 곶감처럼 다 빼먹은 뒤, 심야방송으로 장중한 선율이 흐르는 클래식 공연실황을 내보내는데 더러 막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가 아주 훤칠한 피아노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클래식에 관한 한 그냥 막 듣기만 하는 수..

칼럼읽다 2024.02.24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엉덩이는 늘 기대를 배반한다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엉덩이는 늘 기대를 배반한다 18 _엉덩이 기자 이유진 수정 2024-02-21 00:21 등록 2024-02-20 18:28 남의 손길이 엉덩이에 닿는 일은 극과 극의 체험을 낳는다. ‘궁디팡팡’은 지친 마음에 힘을 준다. 사랑을 나눌 때의 손길도 마찬가지다. 반면 원치 않는 순간 엉덩이에 닿는 손길은 강렬한 수치심과 분노를 유발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뼈에 붙은 근육과 살덩어리로 이뤄진 엉덩이는 사람이 직립 자세로 서고, 걷고, 앉을 수 있게 한다. 그 기능만큼이나 중요하게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사랑과 훈육, 지지와 성원, 그리고 폭력이 깃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엉덩이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일본 동화 ‘엉덩이 탐정’ 주인공은 아이큐가 1104에 이르는 ..

칼럼읽다 2024.02.24

찜닭과 칼국수 사이

찜닭과 칼국수 사이 주상태 요즘 우리 딸은 참 말이 많다 전화하면 1분 안에 달려 나오라고 오늘은 찜닭이 당기니까 그것으로 하고 내일은 비싼 것 먹었으니까 칼국수로 하잔다 닭 반 마리가 2인분이니까 조금 허전하다고 길거리 맛탕 먹잖다 식으면 맛없다고 꼬챙이로 입안에 밀어 넣고 한 개 먹으면 정 안 든다고 한 개 더 생각 없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나를 무척 생각하는 듯 저녁 먹을 때마다 보는 탓인지 요즘 우리 딸은 말이 많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묻고 또 묻는다 빵점짜리 아빠 되지 않으려고 눈을 보고 이야기하다가 입만 보고 대답한다 세상이 두렵지는 않지만 가족이라는 생각에 가끔 목이 메인다 언젠가 나도 딸에게 말이 많을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목젖이 젖어온다 딸이 말이 많은 것처럼 삶이 말이 많아질 것처럼

시를쓰다 202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