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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부고를 쓰기 위하여

재미있는 부고를 쓰기 위하여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웨스 앤더슨의 기이한 가족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 마지막 장면에서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로얄 테넌바움의 묘비는 이렇게 새겨졌다. ‘침몰 직전의 전함에서 가족을 구출하려다 비극적으로 전사하다, 로얄 테넌바움(1932~2001)’. 시대로 보나 그의 성정으로 보나 도무지 말이 안되는 문구다. 콩가루 가족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말대로 그의 유언을 쿨하게 들어준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의 허영심과 가족을 꾸리는 일에 대한 생전의 실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적절한 부고 한 줄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 부고 담당기자가 쓴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는 자신의 부고를 직접 써보라고 한다. 물론 로얄 테넌바움처럼 진솔한 거짓말을..

칼럼읽다 2024.01.01

시간 대량 소비 사회

시간 대량 소비 사회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저자 가끔 강연하면서 청중에게 공간과 시간이 뭐냐 물어보면 코웃음과 함께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합해 ‘그럼 시공간을 아느냐’ 질문을 바꾸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가시적인 공간과 비가시적인 시간을 더하면 개념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선-면-공간으로 대변되는 1-2-3차원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거기에 어디론가 흐르는 시간이라는 차원이 첨가되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4차원 세계는 피상적이다. 마치 선위에 사는 생물 눈에는 점만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실제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차원보다 하나 낮은 차원까지만 인지하고 산다. 시간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

칼럼읽다 2024.01.01

크리스마스가 오면

크리스마스가 오면 이승택,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붙은 화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해당 이미지가 초연된 1964년 사진인지는 불분명하다.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이상저온이 계속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가을이 가기 전에 기온이 영하권까지 내려가더니 낙엽 위로 첫눈이 내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진즉에 겨울 점퍼를 꺼내 입었다. 연말의 여유를 찾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캐럴을 듣기엔 맞춤으로 춥다. 마침 노트북을 들고 찾은 카페에도 시아(Sia)의 노래 ‘스노우맨’이 흐른다. 날씨의 스산함과 마감 압박을 달래줄 연말 감성의 선곡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따져보진 않았지만, 겨울을 맞는 의례 마냥 12월이 되면 캐럴을 플레이리스트에 올린다. 교인도 아니면서. 1960년대 발표된 최인훈의 연..

칼럼읽다 2024.01.01

인생을 멀리서 보는 일

인생을 멀리서 보는 일 입력 : 2023.08.27. 20:16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가족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던지기 훨씬 전부터 나는 가족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매주 제출했던 수필 원고에도 가족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나랑 먼 이야기를 지어내는 법을 몰라서였다. 어째서 나 같은 서사는 내 안에 씨앗조차 없는지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나를 키운 어른들에겐 재미있는 면이 아주 많았다. 안 쓰기엔 너무 웃겼다. 웃긴 만큼 눈물겹기도 했다. 가까이 사는 이들이 마침 흥미로웠으므로 별수 없이 그들을 보며 받아적었다. 평이했던 문장(우리 엄마는 털털하다)에 시간이 흐르면서 유머와 거리감이 생겼고(퇴근한 복희는 자신이 하루 종일 신었..

칼럼읽다 202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