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70

바닥에서 일어서며 [김탁환 칼럼]

바닥에서 일어서며 [김탁환 칼럼] 농부들은 사시사철 새벽부터 저녁까지 성실하지만, 가난을 벗어난 이는 매우 드물다. 정치와 종교가 부의 불평등을 낳는 기존 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농촌 현실에 실망한 이들이 도시로 옮겨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하지만, 거기서도 극빈자로 좌절하긴 마찬가지다. 처절하게 절망한 이들은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와 쓰러진다. 수정 2024-03-26 18:42 등록 2024-03-26 15:26 필자가 농사지은 ‘옥터 옆 텃밭’의 시금치. 사진 김탁환 김탁환 | 소설가 어둑새벽부터 시금치를 거뒀다. 내일 아침 트랙터로 밭을 갈기로 한 것이다. 늦가을에 심은 시금치는 겨울을 견디고 봄에 쑥쑥 자랐다. 함박눈이 마을과 논밭을 뒤덮었을 때는 과연 어린 시금치가 살아남을까 걱정도 했었다. 땅에..

칼럼읽다 2024.03.27

도량형에서 나온 말 ‘한참’과 ‘한치’

도량형에서 나온 말 ‘한참’과 ‘한치’ 입력 : 2024.03.24 19:58 수정 : 2024.03.24. 20:00 엄민용 기자 일상생활에서 길이·부피·무게 따위의 단위를 재는 법을 도량형(度量衡)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량형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부터다. 우리가 오래 써 온 도량형법은 척관법(尺貫法)이다. 길이의 단위는 척(尺), 양의 단위는 승(升), 무게의 단위는 관(貫)을 기본으로 하는 도량형법이다. 중국에서 유래해 우리나라에 정착한 척관법은 시대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나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달하면서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 사이에 물건을 교환하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도량형 단위를 통일할 필요가 커졌다. 그래서 나온 게 ‘미터법’이다. 프랑스에..

칼럼읽다 2024.03.26

심한 이야기를 위하여

심한 이야기를 위하여 입력 : 2024.03.24 19:56 수정 : 2024.03.24. 20:00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드라마를 의미하는 한자는 ‘심할 극(劇)’이다. 글자의 구성을 쪼개면 호랑이와 멧돼지와 원숭이, 그리고 칼의 이미지가 보인다. 맹렬하게 싸우는 범과 시, 칼을 든 영장류가 만들어내는 속성은 긴장감일 것이다. 긴장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상처를 남기고 구경거리가 된다. 책이 아닌 드라마를 쓰면서 이러한 사실을 자주 곱씹고 있다.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심해야 한다는 것. 책에서라면 쓰지 않을 대사, 하지 않을 설정, 밀어붙이지 않을 싸움을 드라마에서는 한다. 극이란 그런 것이니까. 허구는 생존에 유리했다 십수 권의 종이책을 왕성하게도 써왔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미지..

책이야기 2024.03.26

예술과 밥벌이 노동 그 사이 어디쯤 [6411의 목소리]

예술과 밥벌이 노동 그 사이 어디쯤 [6411의 목소리] 수정 2024-03-24 19:07등록 2024-03-24 14:26 2016년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에 여성 작가로 초대를 받은 이후 내가 사는 서울에서도 차차 여러 예술활동을 하게 됐다.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하는 예술활동은 내 작업의 동기이자 영감이 된다. 필자 제공 제소라 | 읽고 쓰고 그리는 예술노동자 매해 연말과 연초가 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예술 관련 공공기관의 창작 지원 마감일이 모두 이때 몰려 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활동비를 얻기 위해 주변 예술인들은 다들 ‘영혼을 갈아가며’ 지원서를 작성한다. 지원서엔 작가로서의 예술관, 그동안의 작업과 예술 활동에서의 성취, 이번 지원금으로 하게 될 작업의 예술적·사회적 기대효과를 작성해야 ..

책이야기 2024.03.25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입력 : 2024.03.24 20:04 수정 : 2024.03.24. 20:05 서정홍 산골 농부 이웃에 사는 농부들과 ‘7일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하기 한 달 전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음식도 조금씩 줄여 나갔다. 3일 전부터는 죽을 먹었고, 단식하는 날부터는 물과 죽염만 먹었다. 먹을 양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단식을 하느냐고? 바쁜 농사철이 되기 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길이 단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식을 하는 방법이나 까닭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가 다르고 몸과 마음 상태가 다르므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단식하기 전에 이런 다짐을 했다. ‘누군가의 덕으로 여태 먹고살았으니 작고 하찮은 일에 날을 세우지 말아야지. 알게 모르게 남한테 상처..

칼럼읽다 2024.03.25

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입력 : 2024.03.21 20:34 수정 : 2024.03.21. 20:37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국민 동요 ‘비행기’에 맞춰 “수헬리베붕탄질”로 시작해 “칼륨, 칼슘”으로 끝맺는 화학주기율표 노래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 이 노래는 ‘칼슘’에서 끝나지만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들은 화학기호가 라돈(Rn)이다. 라돈침대로 워낙 많이 알려졌고, 흡연 다음으로 폐암 원인 물질이란 얘길 익히 들어서 두렵다. 환경부는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환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라돈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준다. 비록 문 열면 미세먼지가 그득하지만.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지하수에서 유입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로 화강암 지대에 많이 발생하여 한반도도 취약한 편이다. 건축자재나 ..

칼럼읽다 2024.03.24

원망을 넘어서는 힘

원망을 넘어서는 힘 입력 : 2024.03.19 20:26 수정 : 2024.03.19. 20:29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은 백이의 충절에 관한 서사이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백이의 생애를 다룬 부분은 얼마 안 되고 나머지는 사마천이 던지는 질문들과 짤막한 인용의 나열이다. “백이는 원망했을까?” 그 질문 가운데 하나다. 백이는 절명시에서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면서 잘못인 줄 모르는 무왕을 비판하고 올바른 도가 실현될 수 없는 시대를 한탄했다. 그런데도 공자는 백이가 원망했을 리 없다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백이가 무왕을 비판한 것은 부친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군사를 일으키고 신하로서 왕을 시해하는 행위가 효(孝)와 인(仁)에 어긋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자의 역성혁명(易姓革命)..

칼럼읽다 2024.03.23

코끼리는 죽어서야 등이 땅에 닿았다

코끼리는 죽어서야 등이 땅에 닿았다 입력 : 2024.03.21 20:31 수정 : 2024.03.21. 20:37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손오공이 머리카락 한 줌 후, 불어 제 분신을 만들 듯 이 선거판을 확, 뒤집을 수 있다면! 그러나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각각 한 표씩뿐이다. 저 자리 거저 준다 해도 앗, 뜨거워라 도망갈 터이지만 무슨 젖과 꿀을 빨 요량인지 머리 터지도록 그곳으로 돌진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몰라도 알 듯한 그들.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느라, 입가에 골짜기가 생기고 입도 비뚤어지는 것 같다. 그런저런 아사리판의 뉴스가 범람하는 곳에서 세계문학전집급의 독후감을 주는 기사 하나를 건졌다. 바다에 모비딕이 있다면 뭍에는 코끼리가 있다. “코끼리 장례, 내 새끼 얼굴이 하늘 보도록…모든 아..

칼럼읽다 2024.03.22

‘혹시나’의 힘

‘혹시나’의 힘 입력 : 2024.03.20 20:11 수정 : 2024.03.20. 20:16 오은 시인 친구 둘과 약속이 있어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약속 시간까지 30분쯤 여유가 있어 랩톱을 켰다. 뭐라도 쓸 수 있을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예열만 하다 달아오르지 못한 채 랩톱을 덮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글 창을 띄워두고 포털에 접속했다. 내 글쓰기 루틴이다. 총선, 선거법 위반, 의료 대란, 대국민 사과, 잡히지 않는 먹거리 물가, 빈집 싸움, 막말 논란…. 분노와 우울을 유발할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의 제목을 일별한 후, 개중 하나를 골라 클릭했다. 기사 하나를 다 읽었을 때 친구 A가 도착했다. “헐떡이면서 오네. 무슨 일이야?” ..

칼럼읽다 2024.03.21

스친 이들의 무심한 온기

스친 이들의 무심한 온기 입력 : 2024.03.19 20:27 수정 : 2024.03.19. 20:29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열한 살 여름방학에 소피는 곧 서른한 살 될 아빠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다. 별거 중인 아빠와 일 년 만에 함께 보낼 시간인 만큼 아이는 신이 났다. 캠코더로 장난스레 아빠를 인터뷰하고 관광버스 유리창에 반사된 얼굴도 찍는다. 시간이 흘러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은 소피는 낡은 캠코더에 녹화된 이십 년 전 영상을 재생한다. 어린 자신이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그 시절 아버지의 깊은 우울과 불안을 거기서 읽어낸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이 곁을 뜰 것을 예감하며 그전에 부모로서 알려줄 것을 전하려 서둘렀던 젊은 남자의 강박을 뒤늦게 헤아린다. 영화 은 이렇듯 끝내 온전..

칼럼읽다 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