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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에 체념하지 않을 용기

세상의 모든 일에 체념하지 않을 용기 조혜진 소설 24.03.08 08:58l최종 업데이트 24.03.08 08:58l 장순심(baram1177) 문득 삶에 치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삶의 고통이나 아픔을 무디게 할 거라는 것은 완벽한 오류다.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에게나 슬픔과 아픔의 크기는 같다. 오래 세상을 살펴온 사람의 눈치나 요령으로 태연한 척, 괜찮은 척 하도록 몸에 익혔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그만그만해요' 혹은 '괜찮아요'라는 상투적 인사를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아주 잘 살죠~' 답을 하고는 가볍게 '농담!'이라며 경쾌하게 냉소를 날리고 싶어진다. 마침 번잡하고 미묘한 마음의 상태를 섬세한 언어로 표현하..

책이야기 2024.03.10

서울시청의 궤변론자

서울시청의 궤변론자 입력 : 2024.03.07 20:19 수정 : 2024.03.07 20:25고병권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지난주 서울시가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에 대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장애인 탈시설 절차를 새로 만든 것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은 의료진 등에게 먼저 자립 역량을 조사받아야 한다. 그다음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립위원회가 해당 장애인에게 곧바로 탈시설을 허용할지, 적응 기간을 거치게 할지, 시설에 그대로 남게 할지를 결정한다. 탈시설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부적응자가 발견되면 재입소를 지원한다. 무슨 재소자 가석방 심사절차 같다.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서울시는 권리의 이름으로 이 당연한 권리를 부..

칼럼읽다 2024.03.10

젊게 늙어가는 시대를 위한 준비

젊게 늙어가는 시대를 위한 준비 이제는 120살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시대를 긴 안목으로 조망해야 한다. 과거의 경제학 공식을 벗어나, 노동과 휴식, 직업과 취미, 경제활동과 사회적 기여 등 인간 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미래가 우리 안에 이미 와 있다. 수정 2024-03-07 18:53 등록 2024-03-07 18:29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정년퇴직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은 여유와 자유이다. 30여년간 시간에 쫓기며 일과 삶의 균형을 잡으려 애쓰다가 어느 틈에 직장을 벗어나니, 자유로운 일상이 축복처럼 다가왔다.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동네를 한바퀴 돌고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전에 내가 누려보지 못한 호사스러운 여유에 새삼 감격하게 된다. 나는 언제까지 건강을 유..

칼럼읽다 2024.03.09

봄날, 나뭇잎 하나의 몽상

봄날, 나뭇잎 하나의 몽상 입력 : 2024.03.07 20:22 수정 : 2024.03.07. 20:26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봄은 오되 기차처럼 온다. 참새 떼 훑고 가는 가시덤불로도 은근히 오고 바지 주머니에도 와서 사람들 인정 넉넉하게 데운다. 봄은 잎에 업혀서도 나온다. 대개 꽃보다 먼저 피는 잎은 가지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선 좀 보라며, 피리처럼 힘껏 불면 다투어 봄을 싣고 이 세상으로 불룩하게 나오는 것. 나뭇잎은 나무의 입에 불과한 것 같아도 그 생김새가 저마다 독특하다. 물푸레나무 잎사귀는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꿀렁꿀렁해서 어느 나라의 해변 같기도 한데 그 물가에서 자맥질하며 놀던 아이들의 파리한 입술을 닮았다. 섬마다 지천인 동백잎은 둘레마다 까끌한 톱니가 발달했는데, 손으로 한바퀴 돌..

칼럼읽다 2024.03.09

에슐리에 갔다가

에슐리에 갔다가 주상태 먹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시간 살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많이 즐기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위한 축제 굶주린 사자처럼 포만감을 즐기다가도 오뚝 솟은 사내를 보고 외면하듯 야채에 손길을 보내고 음식 따로 음료수 따로라고 하지만 후루룩 삼키고 짭짭 넘기고 소리로 즐기고 눈으로 누리는 오늘의 요리는 파스타 덤으로 닭다리 마늘 돼지고기 누들요리는 곁들인 멋스러움 단돈 3,000원에 와인 3종 무한리필 술술 넘어가듯 술과 소리가 어울리면 차고 넘치는 줄 모르는 일 살아있다는 것은 먹는 일 혀끝에서 전해져오는 생명의 소리 허전함을 고기로 채우고 나면 삶이 보인다 사랑마저도 우정마저도 배고픔 앞에서는 사치가 된다

시를쓰다 2024.03.09

주방을 책임지는 금속

주방을 책임지는 금속 입력 : 2024.03.07 20:19 수정 : 2024.03.07. 20:25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연휴에 일손이 모자란다며 긴급 지원요청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처가의 ‘돈카츠’ 매장에 도착해보니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고, 홀과 주방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얼른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돈카츠’를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손님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그런 것처럼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존재, 바로 스테인리스 스틸이란 금속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튀김기도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 있습니다. 옆에 놓..

칼럼읽다 2024.03.08

시가 나오는 풍경

시가 나오는 풍경 주상태 나에게 시는 절망 속에 피어나거나 환희 속에 울러 퍼지거나 꼭꼭 눌러 담은 밥 위에 솟아 오른 활화산 참는다고 참아지지 않고 부르고 싶다고 불려지지 않는 노래 스치는 바람결에 쓰러지다가도 언뜻 웃으면서 다가오기도 하고 미워죽겠다고 소리치면서도 가슴 한켠에선 살겠다고 아우성이고 미안하다는 말 못하게 하면서도 가끔 눈물짓는 걸 보면 미안해서 잠을 설치게 만드는 미쳐도 죽지 못하는 사랑 미워도 살아 숨쉬는 사랑 나에게 시는 친구보다 더 각별하고 애인보다 더 진하게 다가오는 길이 막혀 돌아 나오는 길에 서 있고 돌다 돌다 지쳐서 돌아오는 고향길에서 만나 한 시름 놓고 수다 떠는 바람이 전해져오는 눈물 아쉬워도 잊어버려야 하는 아픔 더욱 보듬고 마는 삶

시를쓰다 2024.03.08

퍼져라, 동네책방 ‘삶의 향’

퍼져라, 동네책방 ‘삶의 향’ 입력 : 2024.03.06 20:18 수정 : 2024.03.06. 20:30 장동석 출판평론가 최은영의 단편 에는 ‘영인문고’라는 중고책방이 등장한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책장이 책방의 삼면에 자리했고, 가운데에는 기다란 평대”가 있는,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런 중고책방(사실 ‘헌책방’이라는 표현이 더 정겹기는 하다) 모습이다. 화자(話者) 희원과 대학교 영어강사인 그녀가 거기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곳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일종의 정서적 연대감 같은 것을 경험한다. 서점, 책방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 가는 일을 즐거워하는 내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희원이 “계산대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오는지 가는지 신경쓰지 않던” 책방 주인 덕분에 “책방에..

책이야기 2024.03.07

본능과 감정 그리고 이성

본능과 감정 그리고 이성 입력 : 2024.03.06 20:15 수정 : 2024.03.06. 20:30 이은희 과학저술가 생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바로 본능, 감정, 이성에 의한 행동이다. 많은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이기적’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생존과 번식을 강화하는 행동들 말이다. 생물은 배운 적이 없어도 혈당이 떨어지면 먹을 것을 찾고, 천적의 기척을 느끼면 도망치며, 번식기가 찾아오면 짝짓기를 한다. 때로 매우 정교해서 지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장된 프로그램에 따르는 자동 반사에 가깝다. 개미의 장례 행동이 그렇다. 사회성 곤충인 개미는 죽은 동료의 사체를 회수해 개미굴 내에 위치한 특정한 장소, 일종의 공동매장지에 안치한다. 하지만 개미들이 동료의 죽음을..

칼럼읽다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