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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대하여

수업에 대하여 주상태 가쁜 숨 몰아쉬고 달려가다가 호흡 가다듬고 멈추어 서는 곳 생명을 위하여 삶을 위하여 거창한 구호로 말하지 않고는 다가설 수 없는 시간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무기로 치장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듯 삶을 주관하는 듯 가장 엄숙하게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나를 말하지 않고 가르치는 시간 강요하지 않으며 가슴으로 다가서길 바라는 순간 그는 사라지고 그들의 명언은 가슴을 후비고 온몸은 멍으로 상처는 거친 입담 속에서 좌절하고 새 생명이 태어나고 마치 드라마처럼 나타나고 정말 순수하게 때로는 순진하게 새들처럼 하늘을 날다 어쩌다 떨어진 깃털처럼 타락하는 시간 속에 주워 담지 않아도 마음 가득 넘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잔치 사라지고 호흡 가다듬고 벌이는 작..

시를쓰다 2024.03.07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입력 : 2024.03.05 20:07 수정 : 2024.03.05. 20:09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축구 아시안컵 대회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강인 선수가 손흥민 선수를 찾아가 사과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용서를 구했음에도, 손흥민 선수가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호소했음에도, 많은 이들이 현장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여전히 인성을 논하며 험악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부정적 반응이 사그라지지 않는 데는, 때를 놓칠세라 속출하는 가짜뉴스들이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분석 업체의 보고에 의하면 2주 동안 유튜브에 올라온 이강인 관련 가짜뉴스가 361편이고 조회 수가 7000만회에 달하며, 그로 인한 수..

칼럼읽다 2024.03.06

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입력 : 2024.03.05 20:05 수정 : 2024.03.05. 20:09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작년 한국의 출생아 숫자는 23만명이다. 그중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를 기록했다. 0.5명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저출산 관련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다. 어딜 가도 “저출산, 저출산…”이다. 최근에는 ‘저출산’이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로 ‘저출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한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출산은 여성의 진화생물학적 적응이자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마리아 델라 코스타의 용어대로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은 시민의 정..

연재칼럼 2024.03.06

삼겹살을 먹으면서

삼겹살을 먹으면서 주상태 밥만 먹으려다 삼겹살까지 먹게 되었다 너무 쉽게 내린 결정에 욕망 탓만 한다 오랜 배고픔 속에 너무 쉽게 뒤집고 또 뒤집고 익을 틈도 없이 게걸스럽게 넘기고 나면 모두 살이 되고 모두 쌀이 될 것 같다 꿈을 음미하기엔 경쟁이 치열하다 공복의 기쁨보다 공복의 간절함을 위하여 마늘도 상추도 고추마저도 춤을 춘다 영혼마저 팔아먹을 만큼 절실한 시대를 가정하고 나를 가장한다 삼겹살을 먹는다는 건 고픈 배가 아니라 슬픈 배를 위한 일이다 남은 의식은 고개 숙이며 잔을 올리는 일 두 배로 올리던 두 바퀴를 돌리다 말던 이미 삶은 쏟아진 물처럼 계속되고 느닷없이 비마저 내린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삶이 위태롭다 그래도 삼겹살은 맛있다

시를쓰다 2024.03.06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입력 : 2024.03.04 19:52 수정 : 2024.03.04. 19:55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얼핏 보아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나무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살 수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물과 양분을 확보하려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곁의 나무보다 높이 올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고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경쟁이 이어지면 나무는 경쟁의 원리를 내려놓고 ‘협동’을 선택한다. 나무가 보여주는 협동의 결과가 ‘연리(連理)’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 줄기가 붙었으면 연리목, 땅속의 뿌리가 붙은 경우라면 연리근이라고 부른다. 곁에 있는 나무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칼럼읽다 2024.03.05

무꽃 피던 날

무꽃 피던 날 수정 2024-03-05 08:26 등록 2024-03-05 07:00 무꽃. 한겨레 자료사진 이광이ㅣ잡글 쓰는 작가 초봄 아침 볕이 남창 왼편에서 작은 삼각형으로 들어온다. 예각이 둔해지면서 빛은 점점 거실 안을 비춘다. 밥상 모서리에서 빛나다가, 밥을 다 먹을 때쯤이면 등 뒤에 와 있다. 일 없는 날 아침은 느긋하고 한가롭다. 베란다 손바닥만 한 화단에 모종해 놓은 수선화 몇 송이, 그리고 못 보던 꽃이 피었다. 하얗고, 약간 보라와 노랑이 섞인 작은 꽃 여러 송이가 얼굴을 비비며 피어 있다. 제법 굵은 줄기를 따라 내려가 보니 몸통이 무다. 무는 절반쯤 흙에 묻혀 있고 땅 위로 나온 몸통이 오그라들어 쭈글쭈글, 늙은 할멈처럼 말라비틀어졌다. “저것이 뭣이래요?” 우리 아파트 아랫집에 ..

칼럼읽다 2024.03.05

사생대회를 가다

사생대회를 가다 주상태 그림을 그리러 가는 건지 나를 그리러 가는 건지 붓으로 그린 나무 시들어버리고 펜으로 그린 동물 사라져버린다 모두들 박제된 풍경 속으로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물통 속에 던져진 빨간 물감은 번지고 번지고 화판 위에서는 붉은 피로 번지고 번지고 진한 나무는 덧칠을 어렵게 만드는 먼 미래 나를 길러낸 것은 그늘 아래 앉아 주먹밥 먹고 수다 떠는 입들 대충 칠한 나무들만 살아남는 우리는 숲속의 나무 그림 속으로 들어 간 나무는 사라지기 전에 시들기 전에 덧칠해져야 한다 조잘거리는 웃음 속에 오후 햇살은 따갑게 시간을 가르고 있다

시를쓰다 2024.03.05

지역소멸의 다른 상상

지역소멸의 다른 상상 수정 2024-03-03 18:46 등록 2024-03-03 18:27 어르신 생활체육 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연일 찬바람에 사삭스럽게 여름을 그리는 날들이다. 그리는 여름에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날은 전남 담양군 ‘국수 거리’ 근처 골목을 지날 때였다. 마을과 관광지 경계에 있는 그 골목에서 그늘이 처진 평상에 할아버지 두 분이 지나는 사람을 가만히 구경하고 계셨다. 언제부터 나와계셨던 것일까 궁금해지며 이런 어르신들을 마주하는 일이 굉장히 일상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장소가 유동 인구인 관광객들에게는 재미와 휴식의 공간이지만, 정주민에게는 그..

칼럼읽다 2024.03.04

우리가 얻은 것은 콘센트요

우리가 얻은 것은 콘센트요 입력 : 2024.02.29 20:09 수정 : 2024.02.29. 22:46 최정화 소설가 커피농장은 노예착취의 온상이었다. 브라질이 서반구 국가들 중 노예제 폐지가 가장 더디었던 이유도 커피 때문이었다. 1871년 ‘노예의 자식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태아자유법이 선포되자 커피 재배자들과 정치인들은 노예제 폐지에 격렬히 반대했다. 1932년 엘살바도르에서는 잔혹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해 봉기가 일어났고 보복극으로 무차별 폭격 대학살이 벌어져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33년 과테말라에서는 노조원, 학생, 정치 지도자를 총살하고 ‘커피와 바나나 농장주들이 일꾼들을 죽여도 처벌을 면제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커피노동자들은 여전히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칼럼읽다 2024.03.04

북한산에 오르다

북한산에 오르다 주상태 새 신을 신고 바위를 오른다 하늘을 향하는 발걸음은 씩씩하다 바람은 산허리를 머물다 흘러간다 오르지 않으면 내려다볼 수 없기에 걸음은 가볍다 족두리봉까지 오르는 일이 시작이라면 사모바위는 삶을 다시 챙기고 인수봉에 이르는 일은 감격이고 절벽을 넘어 가파른 길을 구름을 밟고 나아간다 발을 길게 뻗어 손까지 잡힐 것 같은 곳 눈으로 깨끗하게 씻어낸 풍경들 굽이굽이 솟은 꿈들 스쳐 가는 바람이 싱그럽다 성곽 위에 누워 나비를 상상한다 일찍이 불러보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미처 보지 못한 시간을 바람 속에 갇혀버린 이야기들을

시를쓰다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