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99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입력 : 2023.06.24 03:00 수정 : 2023.06.24. 03:01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서울 혜화동은 나에게 각별한 장소다. 오래전 나는 이 계단을 올라가 붉은 벽돌 건물 2층의 밀다원이라는 카페를 찾아갔다. 공간의 외부와 내부가 흐르듯 연결된 이 건물은 1979년에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정채봉 선생님이 주간으로 있던 ‘샘터’ 사옥이었다. 나는 동화 쓰는 일에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신인작가였다. 당시 밀다원은 나와 비슷한 설렘을 지닌 사람들 몇몇이 모여 책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건물 아래층엔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어서 어린이극이 공연되곤 했다.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는 ..

책이야기 2024.01.13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입력 : 2023.08.18. 20:48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한때 이런 직업을 가져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억 발견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업무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제목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끔 내게 “이 이야기가 어떤 동화인지 알아요?”라고 잊어버린 추억의 책 제목을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어떤 아이가 천둥치는 날 가게에서 케이크를 훔치는데” 하며 기억 속 한 장면을 풀어놓는 식이다. “그 케이크 초록색이죠?”라고 대꾸하면 “맞아요! 제가 그 책 정말 좋아했어요”라며 얼굴이 환해진다. 내가 제목까지 맞히면 상대방은 그리움 가득한 눈빛이 된다. 어린 시절의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은 기억을 덮어쓰는 과정이라서 아무리 즐거웠더라도..

책이야기 2024.01.13

이제 다신 못 보낼 ‘전보’…마지막 한 통 보내볼까 [말글살이]

이제 다신 못 보낼 ‘전보’…마지막 한 통 보내볼까 [말글살이] 수정 2024-01-12 15:06 등록 2024-01-11 14:30 138년 동안 유지되던 전보 서비스는 지난 12월15일 공식 종료되었지만, 설 연휴가 포함된 오는 2월까지 한시적으로 연장한다.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지난달 서울 사는 준하는 할머니께 전보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생신 때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대신 이렇게 전보로 마음을 남깁니다.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 업혀 놀던 기억이 아직까지 새록새록 합니다. 저는 할머니의 인생 중 2할도 못 채울 만큼 어리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중략) 생신 축하드립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연재칼럼 2024.01.13

나이에 관한 말,말,말

나이에 관한 말,말,말 입력 : 2024.01.10 19:59 수정 : 2024.01.10. 20:03 남경아 저자 나이를 많이 의식하고 살지는 않지만, 새해가 되니 ‘나이’가 화두가 되어 경험했던 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10여년 전 연구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여성분이 이런 말을 했다. “살아보니 나는 50대가 참 좋아요. 젊었을 땐 막연히 싫고 두렵기만 했는데 나이 드는 게 좋은 것도 많아요.” 스쳐 지나가듯 나눴던 이 짧은 얘기는 당시 40을 갓 넘긴 나에게 처음으로 50 이후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갱년기 파고 앞에서 크고 작은 몸의 진통으로 힘들어하던 나와 친구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 어머니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야그들아! 그때가 몸이 제일 시끌시끌한 때더라. 그것..

칼럼읽다 2024.01.12

우리의 ‘도서관’이 위태롭다

우리의 ‘도서관’이 위태롭다 입력 : 2024.01.10. 19:56 장동석 출판평론가 남미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한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55년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취임했다. 젊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독재자 후안 페론을 비판한 일로 해고당한 전력이 있는 그로서는 금의환향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명예직에 가까웠지만, 그는 19년 가까이 그 자리에 머물며 책 읽는 아르헨티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은 1810년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와중에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사상과 지식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설립됐다.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것이 1816년이니 도서관이 먼저, 국가가 훗날 세워진 셈이다. 아르헨티나 ..

책이야기 2024.01.12

매끈한 프라이팬의 비밀

매끈한 프라이팬의 비밀 입력 : 2024.01.11 20:03 수정 : 2024.01.11. 20:04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장모님의 돈가스 매장에는 오래된 주방도구들이 많습니다. 매장은 몇번의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용케 살아남은 것들이죠. 그중 하나가 주로 중식당에서 사용하는 웍입니다. 속이 움푹 들어간 커다란 냄비로, 간단한 튀김이나 볶음을 할 때 꽤 요긴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이 오래된 웍은 마치 무언가로 코팅된 것처럼 반짝거립니다. 이는 적어도 수개월 이상 사용하며 기름이 표면에 흡수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전문 요리점에서는 인위적으로 이런 상태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길들이기’라고 하며, 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웍을 고온에서 가열해 표면을 산화시킵니다. 그러면 얇은..

칼럼읽다 2024.01.12

어떤 동행

어떤 동행 입력 : 2024.01.11 20:03 수정 : 2024.01.11. 20:04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중증장애인이 뭔 노동’ 생각했나 그들의 파업에 언론들도 시큰둥 서울시 국어사전엔 아마도 ‘동행’ 뜻이 ‘함께 간다’가 아니라 ‘데리고 다닌다’로 적혀 있는 듯 지난 연말 서울시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에 종사하던 수백 명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서울시가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 자체를 폐기함으로써 정리해고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리해고, 파업, 복직 투쟁.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흔히 들을 수 있는 뉴스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이 흔한 뉴스를 그대로 전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기사에는 정리해..

칼럼읽다 2024.01.12

글과의 생애 엮기

글과의 생애 엮기 요즘의 내 노년은 그 다급한 시절의 아슬한 과정들을 감상하는 일로 즐겁다. 굳이 회오나 겸손을 새삼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다. 젊은 한때의 힘든 시절을 돌아보는 느긋함으로 세월과 변화를 음미하며 그 여유를 즐긴다. 이 한겨레 칼럼을 나는 그 연장선에서 내 생애에서 느낀 그 편안한 긴장감, 자유로운 소곳함으로 써왔다. 그러기 10년을 넘은 이제, 그 묵은 글발도, 그 낡은 생각과 분위기도 달라져야 할 것을 마침내, 당연히 깨닫는다. 수정 2024-01-12 07:00등록 2024-01-12 07:00 김병익 숙제로 작문을 내주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3 때 처음 내 글이 교지에 인쇄된 것을 보았고 고등학생 때 비로소 학생지와 지방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문학이라든가 작가라는 것은 어른들..

책이야기 2024.01.12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도둑맞은 미감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도둑맞은 미감 수정 2024-01-11 02:00 등록 2024-01-10 14:27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스몰 타임 크룩스’ 한 장면. 은행을 털려다 엉뚱하게 쿠키를 팔아 졸부가 된 부부는 상류층의 멋과 미감까지 사려고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될 리 없다. 이명석 | 문화비평가 누군가를 기죽일 때 쓰기 좋은 말이 있다. “너 좀 구린 거 알아?” 미팅 때 옷차림, 동호회 파티에서 튼 음악,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 등 마음을 후벼 팔 기회는 많다. “너 멍청해!”라면 어떻게든 영민함을 발휘해 회복할 텐데, 아름다움이란 점수로 측정 안 되고 주관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핀잔을 들어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새해를 맞아 그림, 공예, 연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푸념한다..

연재칼럼 2024.01.11

발음과 바름

발음과 바름 입력 : 2024.01.10 20:00 수정 : 2024.01.10. 20:03 임의진 시인 자고로 현지인과는 발음이 ‘바름’이어야 말이 통한다. 영어가 짧으니 바르지 못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게 돼. 한 꼬마가 유치원에서 원어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마침 할머니가 집에 오셨대. “할무니, 나 토매이러~” 할머니는 놀라서 손주를 화장실로 급히 안고 갔대. 토마토가 먹고 싶단 소리였는데 토하겠다는 줄 알아들은 거. 누가 피식하면 격노하며 쓰는 말 ‘카르텔’도 뭔 말인지 도통 알아먹질 못하겠다. 여름 내내 앵앵거리던 파리, 파리떼가 시꺼멓게 엉겨 붙은 똥. 나아가 뭐 묻은 자신을 먼저 성찰할 때 써야 할 단어렷다. 그러고 보면 파리도 지역에 따라 발음을 잘해야 알아듣게 된다. ..

칼럼읽다 2024.01.10